[정몽헌 현대 회장이 임직원에게 남긴 편지]

중앙일보

입력

회장직 사퇴후 홀연히 일본으로 떠난 정몽헌 현대 회장이 임직원들 앞으로 한장의 `편지'를 보냈다.

정 회장이 남긴 편지는 A1 용지 한장분량. 20년간의 CEO 생활을 마치고 기업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데 따른 소감과 임직원들의 건승을 기원하는 `작별편지'라기보다는 장기 해외출장길에 오르기전 조직을 추수리는 차원의 건조체 공문 같다.

그러나 한 측근은 "정 회장이라고 한솥밥을 먹어온 임직원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한 심정이 왜 없겠느냐"며 "다만 구차하게 아쉬운 심경을 늘어놓기 보다는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발전하길 바란다는 차원에서 간명하게 글을 남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편지에서 "그간 현대그룹을 창업하고 일궈온 정주영 명예회장께서 정몽구 회장 및 저와 함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며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현대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명예회장의 이런 큰 뜻은 시대의 흐름과 현대가 다시 한번 세계적 기업으로서 발돋움 하고자 하는 깊은 충정으로 이해해 달라"며 "사장님 이하 임직원들이 이러한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모두 합심단결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시켜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 회장은 1일 아침 일찍 사직서와 함께 현대건설, 현대전자, 현대종합상사 직원들에게 이 편지를 보낸 뒤 하루내내 종적을 감췄다가 당일 오후 6시20분 일본으로 출국했다.

정 회장의 `기약없는' 출국배경을 놓고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단순히 `머리를 식히러'갔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장 유력하다. 국내의 대표적인 재벌총수로 불렸던 현대 회장이라는 막강한 자리를 내놓는데 따른 심리적인 허탈감을 달래기 위한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3부자 동반퇴진이 마치 MH가 만든 음모라는 의혹제기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한 나머지 출국을 결행했을 것이란 해석도 있고 그동안 추진해왔던 전자.건설쪽의 일을 마무리하고 대북경협 관련사업을 협의하기 위한 `정리'차원이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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