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병원 24시〉 희망의 메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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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란 게 얼핏 흘러가면 그뿐인 것 같지만 정채(精彩)있는 일부는 누군가의 가슴 속과 기억 속에, 변화된 세포 속에 남아 여전히 꿈틀거린다.

내게는 시간표를 정해 놓고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영상기록 병원 24시〉(수 밤 9시50분 KBS2)다.

제작진의 일관된 태도가 마음에 든다. 시청자를 가르치거나 깨우쳐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담담하게 우리 이웃들의 삶과 고통과 죽음의 풍경을 스케치한다.

죽음 앞에서 주인공이 의연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일 땐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오락이나 정보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 이 프로그램은 흔들림 없는 섬처럼 보인다. 그 섬의 나무들에선 철학적 향기가 난다.

인간의 감정을 흔히 일곱가지, 즉 희로애락애오욕으로 나누는데 〈병원 24시〉에서는 이 감정들 중 두 가지 애, 즉 세 번째의 슬픔과 다섯 번째의 사랑이 늘 교차한다.

슬픔을 구성하는 요소가 인간으로서 불가항력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반면 환자의 아픔과 가족의 슬픔, 그리고 의료진의 의술을 연결짓는 튼튼한 고리는 사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살면서 우리는 버리기도 하고 잃기도 하고 빼앗기기도 한다. 소중함을 모르고 쉽게 버리는가 하면 의지와 무관하게 잃거나 빼앗기기도 한다.

〈병원 24시〉는 살아가면서 우리가 잃어가는 게 무엇인지 환기시켜 준다. 일차적으로는 건강의 소중함이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속내는 사랑과 희망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5월의 마지막 밤 카메라는 말없이 색종이를 접는 한 어린이를 비춘다. 그는 원발성 폐동맥 고혈압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그의 곁에는 이미 접은 세 마리 커다란 백조가 남루한 방안을 헤엄치고 있다.

태어난 지 백일도 채 되기 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삯바느질로 자식의 치료비를 벌어야 하는 어머니. 지금 그가 접고 있는 것은 슬픔일까 분노일까, 아니면 절망일까. 그렇지 않음을 영상이 증언한다. 그는 지금 '희망'을 접는 중이다.

(얼마전 어느 오락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히히덕거리며 색종이 접는 모습을 꽤 길게 보여줄 땐 단지 "왜 저런 일로 시간을 때우지"하고 의아했었다. 재미도 없고 딱히 정보랄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전 주(부제 '우리들의 희망')는 선천성 심장판막증을 앓고 있는 조선족 아기 이야기였다.

1999년 11월 29일생이지만 서류상엔 존재하지 않는 아이다. 불법체류자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아기의 아빠는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복역중이다. 스물 여섯살의 엄마는 아기를 연변동포 할머니에게 맡기고 호프집에서 허드렛일을 한다.

세상은 왜 이렇듯 슬픔을 한 군데로 몰아줄까. 기막히게도 그 아기의 이름은 희망이다.

시인과 촌장은 '풍경'이라는 노래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고 예언했다.

〈병원 24시〉는 시청자를 '인간'의 자리로 돌려놓는 프로그램이다. PD 혼자 섭외도 하고 촬영, 편집도 하는 저예산 고감동의 〈병원 24시〉에서 나는 지금 열악한 한국 독립프로덕션의 희망까지도 읽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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