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 헤리티지] 패션 디자이너 이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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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임신 6개월인 이도이씨가 풍성한 원피스 차림으로 사진을 찍었다. 목에는 색색가지 사파이어가 매달린 꽃송이 목걸이를, 한 손에는 목걸이와 세트인 꽃반지와 결혼반지를 겹쳐 꼈다. 사파이어 꽃 목걸이와 반지 세트는 이씨의 어머니가 “이것을 하고 다니면 꼭 1년 내 남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물려줬는데, 정말로 6개월 후 남편을 만나 지난 4월 결혼했다. 남편은 소프트웨어 회사 JUX의 손명규 대표다.

“나를 내실 있는 디자이너로 만들어 주는 사랑의 유물이지요.”

 패션 디자이너 이도이(36·도이파리스 대표)씨는 청나라 놋그릇, 물총새 핀, 칠보 핀과 호랑이 발톱 펜던트를 보여줬다. 작은 호박만한 그릇은 사방에 중국인 초상이 조각돼 있는데, 구석구석 시퍼렇게 녹이 슬어 있다. 옛날 과자그릇이라고 한다. 두 개의 머리 핀과 펜던트도 꽤 낡았다. 모두 이씨의 증조부가 증조모에게 선물한 유물이다.

 이씨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늘어놓았다.

“증조할아버지에게 막역하게 지내는 보성 선씨 친구가 있었대요. 그 친구가 청나라와 조선을 왕래했던 사신이었다는데, 증조할아버지는 친구를 통해 화장품·화장 도구·과자그릇·비단·거울 등 당시 귀했던 청나라의 장신구를 구해 증조할머니에게 선물하셨다지요. 증조할아버지는 증조할머니가 빼어난 미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셨다네요.”

 이씨의 증조부 이상우(고종8년∼1945년)씨는 살아생전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 용암제 지주이자 서당 훈장이었다고 한다. 그 아들 이원형씨에게 3남 1녀가 있었는데, 이씨의 아버지 이재윤(대구 덕영치과 원장)씨가 그중 막내아들이다.

1 청나라 호랑이 엄지발톱 펜던트. 할머니에게 받은 ‘행운의 상징’이다. 2 청나라 칠보 머리핀. 알록달록한 색상과 화려한 문양은 이도이 패션디자인의 영감이 됐다. 3 청나라 놋그릇. 과자그릇으로 쓰였다고 한다. 4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 꽃 목걸이.


 유물의 대부분은 이씨의 친할머니가 보관을 했는데 이씨더러 “기가 센 아이”라며 유학을 떠나기 전 호랑이 발톱 펜던트와 장신구 몇 점을 내주셨다. 런던의 패션 학교, 세인트센트럴마틴에 다닐 때는 호랑이 발톱 펜던트를 목에 건 채 샤워를 했을 정도로 몸에 꼭 지니고 다녔다. ‘도대체 몇 째 발톱인가’ 궁금해 런던의 자연사 박물관에 찾아가 그 발톱이 엄지라는 것도 알아냈다. 자그마한 칠보 핀과 물총새 핀은 머리를 묶을 때 꽂고 다녔다. 인터뷰 중 그 핀을 바로 뒷머리에 꽂아 모양새를 보여줬는데, 옛날 물건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이씨가 입은 옷과 머리형에 잘 어울렸다. 이씨는 “학교를 졸업한 뒤 갈리아노와 겐조에서 스튜디오 디자이너로 일했을 때도 증조할머니의 유물을 들여다보며 그와 비슷한 영감을 찾았다”고 말했다.

 “아버지도 결혼 당시에는 유물에 관심이 없으셨대요. 그런데 아버지가 일찍이 홀로 된 할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증조모의 유물이 우리 집으로 오게 돼 가족 간에도 얘깃거리가 늘 끊이지 않았어요. 2001년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제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 됐어요. 이런 유물들이 없었더라면 잊혀졌을 증조부와 증조모의 사랑 이야기, 이제는 이도이 패션으로 환생시켜야지요.”

이네스 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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