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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훈련소로 간 월드스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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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비(본명 정지훈)가 306보충대에 입소했다. 외신기자와 해외 팬 등 1000여 명이 현장을 지켜봤다고 한다. 보통 이 보충대에서 훈련을 마치면 전방 사단에 배치된다. 비에 대한 국방부 원칙은 확고하다. 김민석 대변인은 “특혜는 없으며 군(軍)의 정상적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비는 ‘연예병사’ 지원서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국방부 홍보지원대에 가려면 본인 의사가 우선이다. 그 후 엄격한 심사를 거쳐 특기와 실력에 따라 부대배치가 이뤄진다. 참고로 홍보지원대 정원(定員)은 20명이지만 현재 대원은 12명이다. 배우 출신의 이준기, 이동건(본명 이동곤) 상병과 가수였던 박효신 일병 등이 유명하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군복무 중 125일간 휴가를 받은 가수 성시경이 구설에 올랐다. 뭔가 오해가 있는 듯싶다. 홍보지원대나 군악대에 배치된 유명가수들은 위문공연과 각종 행사에 차출되는 경우가 흔하다. 위에서 명령하면 반드시 따르는 게 사병의 의무다. 보통 군 위문행사는 장병들이 쉬는 토·일요일에 집중된다. 군단장(중장)·사단장(소장)들은 휴일 공연을 위로하기 위해 대개 2박3일 포상 휴가를 신청해준다. 국방부 근무지원단장(준장)은 그 서류를 받아 휴가를 보낸다. 성씨의 휴가가 많았다면 그만큼 열심히, 많이 공연을 했다는 의미다. 그를 비난할 일이 아니다. 당신이라면 휴가명령서를 자진 반납하겠는가.

 물론 연예사병이 전방에서 고생하는 병사들보다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마냥 꽃보직은 아니다. 나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다. 이준기를 보자. 지난달 20일부터 미국 LA와 샌디에이고 등을 돌며 한국전쟁 때 희생된 외국 무명용사를 기리는 순회공연을 했다. 귀국한 다음 날엔 국군의 날을 맞아 ‘위문열차 50주년 특집공연’에 투입됐다. 하루 뒤엔 다시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T-50과 잠수함 수출을 위해 측면 지원이 절실하다는 군 수뇌부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참고로 최근 ‘시크릿 가든’이 방영된 인도네시아엔 한류 열풍이 거세다. 현지 정부가 물밑에서 주인공인 현빈 일병과 이준기의 방문을 강력 주문했다고 한다.

 연예사병들도 곱게 지내는 것은 아니다. 이준기는 군 창작 뮤지컬 ‘생명의 항해’ 리허설 도중 50바늘을 꿰매는 상처가 났다. 그는 “전우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이틀 뒤 붕대를 감은 채 무대에 오르는 부상투혼을 발휘했다. 군은 군의관과 앰뷸런스까지 비상대기시켰다. 그의 부상 사진을 본 중국·동남아 팬들이 “준기 오빠를 구출하자”는 인터넷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요즘 국방부가 가장 고마워하는 사람은 싸이다. 그는 병역 파문 끝에 결국 재입대까지 한 뒤 전역했다. 싸이는 지금도 국방부가 부르면 흔쾌히 공연장에 달려 나온다. 그리고 국방부가 건넨 적은 사례비에다 자신의 돈까지 얹어 해당 부대에 통닭 파티를 연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연예사병을 둘러싼 과도한 관심부터 접어야 할 듯싶다. 군 당국도 어느 때보다 신경이 날카롭다. 국방부 측은 “동방신기 여중생 팬들의 ‘우리 오빠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먹여선 안 된다’는 사발통문이 광우병 촛불시위를 촉발시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연예병사들 역시 군복무 중 불미스러운 소문이 나면 자신의 이미지에 먹칠한다는 각오로 누구보다 성실히 근무한다고 한다. 오히려 해병대의 현빈을 두고 “포항으로 오라” “현빈, 백령도 입도!”라는 현수막을 내건 우리 사회가 너무 가벼운 느낌이다. 연예사병의 사격 점수까지 시시콜콜 공개한 국회의원도 가볍기는 마찬가지다. 현빈을 전선에 배치하든 홍보사병으로 차출하든, 해병대 수뇌부가 판단할 문제다. 그도 나라의 부름을 받고 주특기에 따라 묵묵히 복무하는 병사의 한 명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비의 입대를 끝으로, 이제 그들을 가만히 지켜볼 일이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