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반값 약’ 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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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등록금뿐 아니라 의약계에도 반값 신드롬이 등장했다. 보건복지부가 복제약(제네릭) 가격을 특허 만료 전 가격의 53.55%로 일괄 인하하고 내년부터 이 이하의 가격에서 경쟁하도록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상당수의 복제약과 특허 만료된 오리지널 약이 모두 반값이 된다. 이에 반대하는 제약사 사장들이 거리 시위에 나섰고, 약품 생산을 하루 중단하는 등 약품가격의 결정을 둘러싼 정부와 제약업계 간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국민건강보험의 약품비는 연간 10% 이상씩 상승하고 건강보험 재정의 29%에 이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약품비를 건강보험 재정 파탄의 원인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에 대한 근거는 상당히 왜곡돼 있다.

 첫째, 정부가 약가 인하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는 약품비에는 건강보험과 관련 없는 비급여(건강보험 미적용) 진료행위에 관련된 약품비가 포함돼 있을 수 있다. 혹은 약품비율의 분모가 되는 보험진료비에 비급여 항목에 대한 진료비가 빠져서 약품비율이 높게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진료비 중 비급여 비중이 약 40%에 이르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개연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약가 인하의 지표는 급여·비급여와 관계 없이 전체 진료비에 대한 약품비율을 기준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 경우 우리나라 건강보험재정의 실제 약품비율은 2010년 기준 건강보험이 제시하는 29.3%가 아니라 22.5%로 떨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4.3%와 비교해 1.55배 수준이다. 우리나라 전체 진료비 대비 약품비의 비율은 의약분업 이전 21.4%에서 2004년 25.5%로 정점을 이룬 후 오히려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둘째, 건강보험진료비 대비 약품비율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급격히 상승한 후 거의 변동이 없다. 즉, 국민건강보험 급여지출의 증가에 비례해 상승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의약분업으로 인해 의사들이 고가의 오리지널약을 처방하게 되지 않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셋째, 약품비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은 이유가 이 비율을 산정할 때 분모가 되는 국민건강보험의 진료비 지출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정부의 수가억제정책으로 인해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민의료비는 2009년 현재 약 6.9% 수준이다. 이는 OECD국가 평균인 9.6%, 일본의 8.5%보다 낮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이 선진국 수준으로 늘어나면 이 비율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의약품 가격이 국민의 의료비 지출을 늘리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약품가격을 반으로 깎아야 할 만큼 높지는 않다. 정부는 약가를 강제로 인하하는 데 대한 보상으로 의약품 산업의 연구개발 투자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제약사가 제아무리 좋은 약을 공들여 만들고 싶어도 정부가 가격이 높다며 반값으로 팔라고 강요하면 결국 연구할 여력이 크게 줄고 나아가 신약을 만들 수 없게 된다.

 약가 리베이트 거품은 당연히 제거해야 하지만 먼저 제약회사들이 더 좋은 약을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격 중심의 정책은 약품의 품질을 떨어뜨리고, 결국은 국산 약품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이 좋은 약을 생산해서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건강 수준을 개선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부가 추구해야 할 목표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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