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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300년 전 프랑스 ‘반값 우유’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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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임미진
경제부문 기자

올리자니 정부가 무섭다. 안 올리자니 적자가 쌓인다. 우유업체들은 요즘 죽을 맛이다. 올리게 놔두자니 서민 원성이 무섭다. 올리지 말라고 하기엔 원유(原乳) 가격이 너무 올랐다. 정부 고민도 덜하지가 않다.

 농림수산식품부가 계속 우유업체 담당자들을 호출하는 것도 그래서다. 10일엔 서울우유 실무진이, 12일엔 매일우유와 남양유업 담당자들이 불려갔다. 정부의 논리는 이렇다. “원유 가격은 L당 130원 올랐는데, 우유 값은 왜 L당 200원 정도 올리려고 하나.” 압박 수단도 있다. “아무래도 우유 값이 거품인 것 같다. 유통 마진 자료 좀 보자. 그리고 여차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가격 담합 조사에 들어간다.”

 우유 값과 정부의 으름장. 역사적 사례가 있다. 300년 전 프랑스의 ‘반값 우유’ 소동이다. 1793년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로베스피에르는 “우유 값을 반으로 내리라”고 명령한다. 물가 폭등에 서민들 불만이 커서다. 지키지 않으면 단두대행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래서 우유 값이 내렸을까. 아니다. 쇠고기 값이 내렸다. 그 값에 우유를 팔아선 남는 게 없으니 농민들이 젖소를 잡아 고기를 판 것이다. 우유 값은 어떻게 됐을까. 폭등했다. 젖소가 사라지니 공급이 더 줄어들어 암시장에서 10배로 뛴 가격에 거래됐다는 것이다.

 농식품부의 안간힘을 ‘공포정치’에 비유하는 건 아니다. 가급적이면 물가 인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 당국이 뛰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업체를 만나 협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격이란 건 누른다고 눌리는 게 아니다. 반발력만 키울 뿐이다. 우유업체는 “8월에 원유 가격을 올려준 이후 적자가 수백억원 쌓였다”고 아우성이다. 계속 못 올리게 하면 어떻게 될까.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둘 중 하나다. 흰 우유 생산을 줄이거나, 다른 제품 가격을 많이 올려 손해를 보충하거나.

 농식품부는 ‘지나친 가격 인상’을 걱정한다. 그것도 시장에 한번 맡겨보면 어떨까. 2009년 이후 지난달까지 식료품 값이 18.9% 뛸 동안 우유 값은 0.3% 떨어졌다. 업체끼리 판촉 경쟁을 하느라 대형마트 판매 가격이 내려간 것이다. 소비자는 싼 제품을 찾고, 경쟁에 노출된 업체는 원가 절감을 위해 군살을 깎는다. 그게 시장이다.

임미진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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