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에 글로벌 위기 답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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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심상달 연구위원

10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듣고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린스턴대의 크리스토퍼 심스 교수, 뉴욕대의 토머스 사전트 교수. 이들이 글로벌 재정위기의 한복판에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어찌 보면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세계 경제에 위기 극복을 위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 귀에는 “바보야, 문제는 재정이야!”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1979년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이 두 학자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심스 교수의 제자로 있으면서 사전트 교수의 수업을 들었다. 당시 미네소타 대학은 거시경제학자들의 본산이었다. 심스 교수와 사전트 교수는 이곳에서 재정주의의 싹을 틔웠다. 재정주의. 아직도 국내에선 대중에게 그리 익숙한 단어가 아니다. 경제를 결정짓는 데, 즉 물가나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데 재정정책이 통화정책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론이다.

 두 학자는 1980년대 초부터 재정주의를 주창했지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통화정책, 즉 시중에 돈을 얼마나 푸느냐가 경제를 좌우한다고 믿는 통화주의자들이 득세하던 때였다.

 이들이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미국을 비롯해 남미 등의 정부 부채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시기다. 2000년대에 들어선 고령화 문제까지 등장했다. 나라마다 정부 부채를 걱정하기 시작했고, 재정이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 2011년 하반기, 재정이 온 세계의 제 1 화두가 됐다.

 두 교수는 유럽연합의 경제위기를 이미 예견했다. 그것도 유럽연합이 막 통합하던 때부터였다. 심스 교수는 유럽연합의 통합 계획을 보며 많은 걱정을 했다. “통화를 하나로 합치면서 재정을 합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정책을 펼 수 없다”고 우려해 왔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선 “유럽 재정이 너무 심각하다. 큰 일이 올 수도 있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올해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서울대의 공동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정치다. 건전 재정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한다고 해도 각국 정부는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왜 국채 가격이 폭락하는가. 그 나라가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재정주의자들은 “세금을 더 걷어서 부채 상환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답한다. 하지만 정치가들은 양적 완화 정책을 편다. 세금을 더 거두면 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통화를 풀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거다. 하지만 답이 되지 못한다. 세계 경제는 갈수록 출렁인다.

 한국은 어떤가. 내년은 정치의 해다. 정치인들은 벌써부터 장밋빛 공약을 경쟁하듯 쏟아내고 있다. 위기를 벗어나려면 우선은 건전 재정이다. 노벨경제학상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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