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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고전 읽기의 행복감 찾아낼 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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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써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호적에 오른 이름 외에 또다른 이름 하나씩 더 갖고 있기 십상이다. 그 이름을 거개는 '필명'이라 부른다. 그러나 '필명' 대신 '가명'이라고 부르던 때도 있었다. 번역을 하든 저술을 하든, 자기 이름을 그대로 내놓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남경태의 고전 읽기〉를 맡아서 집필하게 된 남경태(40)님의 집필 생활은 '가명'인 '남상일'로부터 시작된다.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 백산서당의 직원으로 일하면서 사회주의 관련 고전 서적들을 번역하던 때, 판매금지 서적 류의 책을 번역하며, 자기 이름을 내놓는 일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었지만 이제 앞으로는 글만 써서 먹고 사는 일도 가능하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물론 지금까지 힘들고, 점점 더 힘들어지겠지만, 하는 데까지는 해 봐야겠어요. 지난 달에는 〈침대 밑의 인류학자〉라는 아주 재미있는 책의 번역을 마쳤어요."

96년께부터 본격화한 그이의 저술 활동은 번역서 7권을 포함해 모두 15권에 이른다. 이번에 번역을 마친 〈침대 밑의 인류학자〉는 〈사람의 역사〉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인류학자 아서 니호프 교수의 역작으로 전 세계 인류의 짝짓기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로 매우 흥미있는 책이라고 한다.

지구상의 삶을 관리하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SF 소설식 구성의 이 책에는 동양의 윤회와 업 개념도 도입돼, 특히 우리에게 적지 않은 느낌을 줄 것이라고 그이는 강조한다.

지난 해에 낸 〈종횡무진 서양사〉 〈종횡무진 동양사〉는 이미 적지 않은 독자들에게 알려졌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 4월부터 MBC 라디오의 심야프로 '모두가 사랑이에요'에서 〈남경태의 종횡무진 세계사〉를 진행하고 있다.

"MBC 외에 CBS의 〈다섯시엔 쉬어갑시다〉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남경태의 통 크게 세상보기〉라는 코너를 맡고 있어요.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저는 조금은 고리타분하다 싶은 고전과 관계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를테면 지난 주에는 허준이 활동하던 시절, 조선시대의 무역이 밀무역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서두르는 듯한 말뽄새에서도 느껴지는 그이의 넘치는 에너지는 주 2회의 방송 출연 외에 모두가 저술 활동에 투입된다. 올해 안에 '종횡무진' 시리즈의 완결편이 될 '한국사 편'을 매듭짓는 일에 매진할 계획이란다.

이처럼 활력 있는 저술 활동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아직은 읽은 것보다 읽어야 할 책들이 더 많다'는 겸손함과 그를 바탕으로 한 성실한 독서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느껴진다.

"읽어야 할 책들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서 독서의 경제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고전이라 하면, 일단 질적으로 높은 수준을 담보, 독자들로부터 그 수명을 보증받은 것이라고 봐야겠죠.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는 바에야 단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영양가 있는 책을 읽자는 것입니다. '나쁜 선생 열 명보다 좋은 선생 한 명이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대부분의 고전 읽기는 행복하지 않다는 점도 빼놓지 않는다. 과거에서부터 미래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책이라면, 자연히 쉽게 읽히지 않을 것이며, 그런 쉽지 않은 책들을 읽으려면 무엇보다 주체적인 책 읽기가 이루어져야 할 것. 바로 이 '주체적 책 읽기'가 독서의 원형이라는 주장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이론서로 볼 것이냐 고전으로 볼 것이냐. 다시 말해 그 시대의 맥락을 보여주는 하나의 고전으로 볼 것이냐,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자본주의 분석서로 볼 것이냐. 이것은 모든 책 읽기의 방법을 구분하는 기준에 해당합니다. 내 식으로 읽을 것이냐, 저자의 의도대로 읽을 것이냐의 문제지요.

여기에서 내용을 익혀야 할 고전이라면 저는 그 고전의 에센스를 전할 것입니다. 그 고전에서 무엇을 배울 것이냐 하는 점을 찾아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나름의 서술방식으로 고전을 읽어내고 싶습니다. 백과사전에 모두 나오는 고전의 외적인 정보를 부언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저는 또 고전에서 주관적으로 받은 느낌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독자들의 주관에 따른 판단을 기다릴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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