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대한 부채의식 벗어버릴 계기 절실

중앙일보

입력

□ 2000년 5월 22일, 민예총 사무실. 임명구(민예총 사무총장, 나이 마흔아홉, 1980년 당시 스물아홉 살).

"광주 공연 때문에 바빠서 못 봤어."
"책으로 나왔다는 건 알았지만, 책도 못 봤지, 뭐."
"한번 봐야겠구나."
"어디? 동아닷컴 홈페이지? 아. 리허설하는 걸 찍었구나."
"희곡은 그게 작년에 실천문학에 실렸던 거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 기념행사 기간인 지난 17일 전야제에 참석하러온 민주당 386세대 의원 당선자 등이 광주의 한 단란주점에서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신 사실이 드러났다.(중앙일보 5월 26일치 31면에서)

□ 5월 23일, 동아닷컴 회의실. 최영록(동아닷컴 인터넷취재본부 편집팀장, 나이 마흔넷, 1980년 당시 스물네 살).

"오늘 출근하면서 버스 안에서 〈오월의 신부〉를 보는데, 눈물이 쏟아져서 혼났다, 야."
"어떻게 그렇게 쓸 수 있는지, 황지우는 정말 천잰가봐."

▷"너무 슬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의 분노가 정당한지 묻고 되물었다."(중앙일보 5월 27일치 30면 인터뷰에서 '광주 술판'에 대한 임수경의 말)

□ 5월 26일, 신림역 주변의 커피숍, 박진선(서울대 영문과 4학년생, 나이 스물다섯, 1980년 당시 다섯 살)과 고규홍(조인스 북사이트 편집장, 나이 마흔하나, 1980년 당시 대학 2년생)

"부담스러웠어요. 아, 또 오월이야 하는 느낌이요. 대학신문에 있었기 때문에 오월만 되면 오월 광주를 취재해야 했어요. 사람들을 찾아가 이야기도 듣고, 광주에 직접 가기도 하면서 오월 광주가 우리 민족사에서 가지는 위치를 어렴풋이나마 알게도 됐고 또 알아야 한다는 부담도 있어요. 오월에 관한 책들은 잘 썼든 못 썼든 꼭 읽어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주거든요. 부채감 때문에 공부하는 느낌으로 소설을 읽는다는 건 이제 싫어요.벗어나고 싶은 거죠."

-황지우의 〈오월의 신부〉는 좀 다르지 않았어요? 이를테면 임철우의 다섯 권 짜리 장편소설 〈봄날〉과 비교된다는 거죠. 시간의 흐름을 따라 다큐멘터리처럼 구성한 소설이 〈봄날〉이면, 〈오월의 신부〉는 광주항쟁이라는 사건을 소재로 하기는 했지만, 있는 그대로 되살리는 게 아니라,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실존을 그리고자 한 것 같던데요.

"시 잘 쓰는 황지우가 광주 이야기를 신화적 요소와 상징을 끌어다 살풀이 굿판을 크게 한번 벌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마치 무당 같은 거죠. 황지우의 작업이 워낙 그렇잖아요. 전방위적인 종합 예술이라 할까요. 더구나 시극의 형식을 가졌기 때문에 더 많은 상징을 동원할 수 있었겠지요."

-황지우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광주항쟁을 생각하면 도청이 계엄군에 의해 점령당하던 날 새벽 창가에 비친 한 남자의 어두운 그림자. 그 사람의 실존은 도대체 어떤 상황이었을까, 또는 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어떠했을까, 이 희곡에서 황지우는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실존을 다루고 싶어 애쓴 흔적 때문에 오래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의 원초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이 희곡이 오월을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감정적 여파를 미칠 것이라는 생각에는 이의를 달 수가 없어요.

저는 오월에 관해 궁금해 했던 점들을 황지우는 어떻게 해석했는지 알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광주항쟁의 혁명적 요소라든가, 계급적 갈등 등. 그러다 보니 감정이입이 잘 안됐어요. 이 희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는 뒷부분을 허술하게 읽게 된 것도 그런 제 독서법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아침에 죽을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새벽 1시에 결혼식을 올리지요.

"황지우가 여자를 표현하는 방식은 마음에 안 들어요. 앞 부분에서 죽어간 혜숙이도 소극적인 희생양으로 표현됐고, 겉으로는 굉장히 적극적인 캐릭터로 표현된 민정이 역시 남자들과의 관계에서는 소극적인 마리아상 정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허인호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그 사람과 장 신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는 거죠. 이 희곡에서는 캐릭터 하나하나에서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비극적 이미지가 더 중요했던 것 아닌가요?"

-저에게는 허인호라는 캐릭터의 이미지가 강했어요. 정말 내 곁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 듯 했단 말이죠. 광주 이후에 가까운 친구들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과 같은 종류의 고통을 허인호에게서 보는 듯 해서 가슴이 아팠어요. 다이나마이트의 뇌관을 뽑아버릴 때 허인호가 가졌던 갈등. 그건 갈등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잘 상징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또 신부가 두 분 나오지요. 그 분들은 지극히 인간적으로 그려지지요. 속(俗)을 떠나 성(聖)에 머무른 신부가 아닌 거죠. 나중에 정신의 고통으로 아파 하는 허인호의 상처를 자신의 장백의로 감싸 주는 장면도 아름다워 보였어요.

"그건 오히려 하나의 인간이 다른 하나의 인간을 감싸안았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어요."

-광주는 이제 진선씨 뿐 아니라, 민족 전체가 함께 벗어버려야 할 짐이겠죠. 다큐멘터리 차원의 보고서만으로는 결코 그 짐을 벗어버릴 수 없어요. 우리의 키워드는 여전히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라는 화두를 광주를 소재로 접근해 체화시켜내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대들의 영광 저 뒤켠에는, 계엄군의 캐터필러 아래로 산화해간 시민군의 넋과 독재의 마수에 꽃잎처럼 스러진 혼령이 아직 구천을 맴돌고 있음을 기억하라(소설가 유시춘이 중앙일보 5월 27일치 3면에 투고한 '국민을 두려워하라'에서)

□ 5월 28일, 목동의 한 오피스텔, 김용운(인천 테크노월드 컴퓨터 판매점 상인, 나이 서른여덟, 1980년 당시 열여덟 살)과 다시 고규홍.

-〈봄날〉을 펑펑 울면서 봤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어.

"형은 워낙 울면서 보는 책이 많잖아"

-흐~. 다큐멘터리만으로는 모자란다 싶은 거야. 그런데 〈오월의 신부〉는 그대로 완성된 하나의 시로 읽히더란 말야.

"나는 〈오월의 신부〉를 연극으로 한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책을 한번 보자 하고 서점에 가서 그 책을 찾았더니 서점 여직원이 그걸 잡지 코너에서 찾더라구. 잘 모르더라는 거지.

나는 사실 광주를 다른 책이라면 예술성보다는 다큐멘터리적인 글을 더 원해. 당시 나는 노가다판이나 공장을 돌아다녔잖아. 그때 쉬쉬하며 떠도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광주의 일을 궁금해 했거든.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게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잖아. 광주의 실체도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연극이나 문학에서 수용하는 게 뭐 그리 급해. 아직은 사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실체를 드러낸다는 것이 지금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야 불가능하겠지. 그러나 광주 현지에 있었던 사람들 하나 하나의 상태와 느낌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거야. 그 동안 나온 글들을 보면 '그럴 수 있었겠구나' 하는 식으로 받아들여질 뿐이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거든. 나는 그 부분에 더 관심이 있는 거야. 그냥 관념적으로 광주는 이랬을 것이라는 식의 글은 이제 그만 됐으면 좋겠어."

-광주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야 여전히 과제겠지. 그러나 우리 다음 세대는 오월 광주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는 거야. 일테면 네 딸이나 우리 아들놈은 광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겠냐?

식민지 시대를 돌아보자. 숱하게 많은 역사책들보다 박경리의 〈토지〉 한 권이 더 많은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냐? 〈오월의 신부〉를 〈토지〉에 견주는 것이야 무리겠지.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예술이라는 장르에서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수용한다는 점에서는 통할 수 있는 거잖아.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의 힘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많이 부족해. 문학적 방법 따위를 공부한 적이 없어서 뭐라고 딱 짚어낼 수는 없지만, 이걸로는 안된다 싶은 거야. 그냥 황지우씨가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이 글을 쓴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더라고. 그게 얼마나 답답하냐? 집 사람도 이 책을 보고는 '아 지겨워' 그러더라구."

-허인호라는 캐릭터는 참 가슴 아프더라. 양귀자의 〈원미동 시인〉에 나오는 정신병 걸린 대학생 생각도 나고. 그 치열한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정상적인 생활에서는 멀어진 허인호의 삶이 참 가슴 아팠어.

"허인호를 장 신부가 장백의로 감싸 안는 장면 있지? 두 사람 모두 패배자이긴 마찬가지야. 장 신부는 여전히 회의하는 인간이고 허인호는 자기의 길을 가기 위해 정신적인 장애를 겪고 있는 거야. 오히려 자기 뜻을 안으로 씹어 삼켜야 하는 장 신부가 정신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일 거야."

-새벽 1시의 결혼식은 어때?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실존이라는 생각과 연관지어 이야기하자면 죽음 앞에서 가장 살아 있고 싶어하는 상징으로서 성적인 교합이라는 장치를 동원한 것 같아. 아침이면 모두 죽어갈 것을 알고 있지만, 남녀간의 교합이라는 본능적인 부분으로라도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거 아닌가 말야.

김원일의 소설 〈도요새에 관한 명상〉에서도 무위도식하는 형에게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새벽에 발기한 형의 성기 뿐이라고 하는 표현이 나오거든.

"생명력을 상징하는 이야기는 결혼 외에도 있어. 일테면 시간이 없어서 똥도 못 누겠다는 이야기. 똥을 눈다는 건 살아 있다는 사실의 확인 아니겠어. 똥 눌 시간도 없다는 것보다 더 얼마나 절박할 수 있겠어.

헌데 대화로만 표현하는 희곡의 한계 때문인지 그리 절박하게 느껴지지가 않아. 난 되레 혜숙이가 죽어가는 앞에서 그 엄마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감정의 변화를 더 철저하게 풀어냈어야 한다는 생각이야. 황지우는 그걸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어.

자식의 죽음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는 엄마의 심정, 어쩌면 내가 광주 이야기에서 확인하고 싶은 건 바로 그런 부분이란 말야. 광주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보자면 한이 없을 거야. 그 광주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 절박한 상황을 겪는 개별적인 사람 하나 하나의 상황과 감정의 변화를 깊이 있게 표현한 글을 보고 싶다는 말이야."

-그래도 내가 이 작품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광주라는 사건을 광주를 겪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실존적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거야.

□ 5월 29일, 조인스닷컴 엔존 팀 사무실, 고규홍
두 시간 여의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서며 '다시 읽어보겠다'고 했던 스물다섯의 여대생 박진선씨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러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오월 광주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시극으로 형상화한 황지우의 희곡집 〈오월의 신부〉도 열 여섯살의 나이 차이가 만들어준 간극을 좁혀주는 데에 여전히 성공적이지 않았다. 연극은 끝나고 희곡집만 남았는데, 사람들은 요즘 '광주 술판'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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