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미의 아티스트 인 차이나 (11) 중국 팝 아트 창시자 왕광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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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대비판-코카콜라39(1993), Oil on canvas, 200X200cm

왕광이(王廣義·Wang guangyi·54)라는 이름은 중국 현대미술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사회주의의 통제 속에서 살아왔고, 문화대혁명의 광기와 자본주의 개방의 혼돈을 온몸으로 겪었던 작가는 이 같은 현실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담아냈다. 문화대혁명 시대의 강렬한 포스터와 중국에 들어와 위세를 떨치고 있는 코카콜라, 나이키 등 서구 자본주의 유명 상표와의 결합. 1990년대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대비판(大批判) 시리즈다. 중국 최고의 평론가 리씨엔팅은 이 시리즈를 두고 ‘폴리티컬 팝’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중국 최초의 팝 아트 창시자로서 그의 이름은 여전히 무게를 갖는다.

그를 만나기 위해 베이징을 찾았다. 시내를 출발해 외곽으로 30분 정도 떨어진 단독주택 단지. 단지 안으로 들어서자 멀리서도 표지처럼 그의 설치미술 작품 ‘유물주의자(Materialist)’들이 보인다. 아틀리에는 담백했다. 최소한의 테이블과 탁자 외에는 모두 작업공간. 예술가의 작업실은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인 양 생활의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작품을 전방위 각도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 2층 회랑식 구조 역시 기능에 충실한 선택이다. 번잡스러운 게 싫어 그 많은 예술촌을 뒤로 하고 조용한 시골에 작업실을 마련했다는 작가는 베이징 시내의 아파트에서 이곳으로 매일 출퇴근을 한다.

그에게 세계적인 유명세를 안긴 ‘폴리티컬 팝’이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회주의에서 자라왔고 유토피아 이념을 세뇌받으며 자란 세대인 나에게 눈앞의 현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개의 큰 물줄기로 보였다. 단지 중간적인 입장에서의 딜레마를 표현한 것이지,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를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과 공존. 그러나 세상은 나의 그림을 현실 비판으로 받아들였다. 서로 자신의 입장으로 작품을 보니 복잡해지는 거지. 평론가들의 오독이었다.”


▲왕광이(오른쪽)작가와 진현미 대표.

작가의 말에 아트미아 진현미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대비판이라는 제목은 둘 중 누구를 비판하는지, 혹은 모두를 비판하는지, 아니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제목이에요. 오해와 오독을 예견한 전략이 깃든 왕광이 예술언어의 결정판이죠.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는 것. 이게 현대미술의 매력이랍니다.”
그는 지난 9월 선전에서 현대미술의 역사가 된 세계의 작은 예술운동들의 문헌과 자료를 한데 모은 ‘소운동(小運動)전’에 참가했다. 중국 현대미술의 서구화를 일군 ‘85New Wave운동’에 관한 당시 TV 인터뷰 자료, 슬라이드, 다양한 논쟁거리를 낳았던 잡지, 신문들을 자신의 전시룸에서 선보였다.

지난 20여 년간 세계 미술계를 한바탕 흔들어놓았던 작가는 내년에 대규모 회고전을 앞두고 준비가 한창이다. 회고전에는 중국 현대미술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작가의 지난 작품 100여 점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다. 이를 위해 미국·유럽 등 세계 각지의 컬렉터들(그는 자신의 작품을 누가 소장했는지 모두 기록해놓았다)은 소장품을 기꺼이 빌려주었다. 전시는 베이징 투데이 뮤지엄을 시작으로 중국 전역은 물론 독일·영국·미국·네덜란드 등 세계 순회전으로 이어진다. 규모도 규모지만, 자신의 소장품을 오랜 기간 선뜻 내어주는 컬렉터들의 작가에 대한 존경심 역시 인상적이었다.

그는 지금 새로운 예술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출발점이 된 리더들에 대해 연구”다. 그는 사회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로 엥겔스, 레닌, 마오쩌둥, 마르크스, 스탈린을 꼽았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을 특유의 강렬한 필치로 추출해 냈다. 자본주의 리더로 누구를 꼽을 것인지는 “아직 연구 중”이라고 했다. 내년 회고전의 마지막 섹션을 장식할 테마들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출발점이 된 리더로 예수를 꼽았다는 점이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았다는 성경 속 이야기야말로 물질 중심 사상의 시초가 아니냐”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새 시리즈는 지난 ‘대비판’ 시리즈와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일까.
“지난 20년간 나는 서양문화의 영향을 받은 변방의 작가였다. 서양문화가 주체가 되어 왕광이를 설명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나를 중국의 앤디 워홀이라고 소개를 했다. 타이틀 자체에 이미 서양의 가치관이 담겨 있는 것이다. 가치관과 가치 척도에 이론체계가 없어 서양이론을 가지고 점수를 매겼다. 이것은 골프룰로 씨름을 판단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제는 중국 작가 왕광이가 주체가 되어 이야기하려고 한다. 지난 대비판 시리즈가 중립적 입장이었다면, 중국 사람이 세계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표현해낸 것이 지금의 작품들이다. 작품을 해석해내는 각도를 바꾼 것이다. 그래서 요즘 서양과 동양의 시각적 차이를 고민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고민이 미래의 중국현대미술이 가야 할 방향과도 맞물려있다고 말한다. 선교사가 기독교를 전파했듯, 이제는 민족적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의 시각과 언어로 자신이 갖고 있는 문화의 아름다움을 포장하고 얘기해야 한다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자체 문화가 회복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문화적 자존감을 피력했다. 이것이 비단 중국만의 이야기일까.

그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원조 예수’라는 말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이 또한 얼마나 많은 오해와 오독이 있을 것인가. 수없이 다양한 해석과 오해와 해프닝이 연출될 것인가라는 우려에는 아랑곳없이, 지난 시간의 소란스러움을 뒤로한 채, 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언어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것이 중국작가, 왕광이라는 듯.

◇왕광이(王廣義·Wang guangyi)=1957년 하얼빈 출생. 1984년 저장미술학원(浙江美術學院)을 졸업했다. 1985년 북방청년예술단체를 조직, 중국 내 ‘85New Wave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중국에서 처음으로 팝아트를 시도한 예술가다. 1990년부터 정치의 통속성을 상업적 이미지와 연결한 ‘대비판(Great criticism)’ 시리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진현미 대표=영어 이름 미아(Mia). 베이징 다산쯔 차오창디 예술특구에서 자신의 갤러리 ‘ARTMIA(아트미아)’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블루칩 작가들과의 만남을 중앙SUNDAY 매거진과 리빙 매거진 ‘레몬트리’에 연재하고 있다.

베이징 정리 이호선 리빙매거진‘레몬트리'편집장,사진 문덕관 studio L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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