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도시의 벽을 캔버스 삼아...제도권 예술의 벽 허물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9호 04면

1.『뱅크시, 월 앤 피스』(뱅크시, 위즈덤 피플, 2009)

월가의 탐욕을 규탄하는 ‘좀비’들의 행진은 정치적인 시위가 현대미술적인 퍼포먼스로 대치된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촌철살인의 구호와 익살스러운 포스터들, 별 대신 기업의 로고가 들어간 성조기, 녹아내려 붕괴하고 마는 ECONOMY라는 얼음 글자조각 등 재기 발랄한 시위도구들이 등장했다.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26> 뱅크시의 『뱅크시, 월 앤 피스』

1968년 학생혁명의 패배 이후 ‘전략’이라는 군사용어가 문화 활동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정치투쟁은 예술투쟁으로 대체됐다. 기성의 제도 자체보다는 그것을 움직이는 관념을 전복, 해체하는 것이 주 목표가 되었다. 더불어 기성문화를 대체할 수 있는 서브 컬처의 능동적인 힘이 주목받았다. 낙서화의 등장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생산성이 떨어지던 80년대 미국 미술에 낙서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등장은 새로운 돌파구처럼 보였다. 안타깝게도 이 ‘검은 피카소’는 제도권에 화려한 진입을 마친 순간 죽었다. 88년, 28세였다. 그가 살았다면 어떤 작업을 이어갔을까 하는 궁금증만 남기고.

2000년대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스타급 낙서화가가 등장했다. 그의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이미 많이 보았다. 화염병 대신 꽃다발을 던지는 시위대, 벽에 기대서 실례를 하는 근엄한 영국 왕실근위병, 다이애나비 얼굴이 들어간 10파운드 화폐가 쏟아지는 현금지급기 등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상식과 도덕이 지배하던 공간을 다른 이름으로 탈바꿈시킨다. 쓰레기통 주변에는 ‘피크닉 지역으로 지정됨’, 트라팔가 광장에는 ‘폭동지역으로 지정됨’이라는 푯말을 붙인다. 주류적인 공간 인식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분장을 하고 유명 미술관에 몰래 들어가 자기 그림을 슬쩍 걸어놓고 나오기도 한다. 뉴욕 MoMA에는 싸구려 할인 깡통 수프를 그린 그의 작품이 6일 동안 전시됐다. 돌에 유성펜으로 낙서를 한 원시시대 그림 같은 작품은 대영박물관에 8일 동안 전시되고 결국 그곳에 영구 소장됐다. 이 얼굴 없는 화가의 이름은 뱅크시(Banksy·37)다.

2.뱅크시가 만든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서 출구’의 한 장면.두건을 쓰고 있는 사람이 뱅크시다. 이 영화는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에서 9일 오전 11시와 오후 6시30분에 볼 수 있다. 사진 배급사 조제 제공

최근에 그는 영화를 만들었다. ‘선물 가게를 지나서 출구(Exit through gift shop)’라는 긴 제목은 전시 관람 이후 기프트 숍을 지나야 출구로 연결되는 미술관의 구조가 현대미술의 상업적인 구조를 연상시킨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현대미술에 관한 블랙유머 같은 영화는 정확하게는 ‘뱅크시 상황’을 다루고 있다. 내가 말하는 뱅크시 상황이란 비상업적일수록 열광하고, 벽에 그림을 그리면 벽째 떼어다 팔아버리는 놀라운 현대미술의 상업적 시스템에 직면한 비상업적 미술가의 처지를 의미한다.

뱅크시는 거리의 예술가다. 허가받지 않은 도시의 빈 벽에 몰래 낙서를 한다. 어쨌든 낙서화는 불법이므로 그는 경찰의 체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제 그의 낙서화들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관광상품이 되었다. 구글에서는 뱅크시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런던의 거리를 친절하게 안내하는 지도를 찾을 수 있다. 집주인들은 그의 낙서를 지우는 대신 투명 플라스틱 액자를 둘러 보호한다. 노출이 적을수록 호기심을 자극하고 주목을 받는 법.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서 출구’에서도 낙서화가의 비합법성은 스타가 되는 지름길처럼 이용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낙서화의 역사는 미술의 상업화와 관련이 있다. 1대 낙서화가 바스키아가 등장했던 80년대는 컬렉터들의 영향력이 본격화되던 시점이었다. 이들은 이전의 후원자들처럼 뒷짐을 지고 점잖게 미술관을 지원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직접 갤러리를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작품을 사들였다. 진보적이면서 동시에 보수적이었다. 흑인이 그린 낙서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선택은 분명 진보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비디오·설치 미술 같은 새로운 매체가 아니라 벽에 그려진 것일지라도 그림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벽에 그린 그림은 벽째 사버리면 된다. 낙서화는 상업미술과는 무관하게 시작했지만, 결국 소수의 돈 많은 백만장자의 수집품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뱅크시는 잘 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그도 어마어마한 식욕을 자랑하는 미술계의 상업적 시스템에서 각광받는 스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홈페이지(www.banksy.co.uk)를 통해 전 세계에 작품을 알린다. 2006년에는 LA에서 성공적인 전시를 했다. 이 전시에서 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그의 작품을 구매했다고 한다. 경매에서는 그의 작품은 2008년에 최고가 170만 달러에 팔렸다. ‘선물 가게를 지나서 출구’는 그가 현대미술의 구조를 영악하게 꿰뚫어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습을 보이지 않을수록 자신의 상품가치가 높아진다는 것, 또 허접하지 않게 효과적으로 모습을 슬쩍 드러내는 방법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예술가로 오래 사는 방법은 바스키아를 롤모델로 삼지 않는 것이다. 그의 롤모델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바스키아의 낙서화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반면 뱅크시는 좀 더 나아갔다. 평화운동·환경운동과 관련 있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그에게 벽을 제공한 것은 도시에 빽빽한 건물을 지은 기성세대이며, 벽을 메시지 전달 수단이라고 가르친 것은 광고들이다. 기성세대가 지은 건물벽에 상품을 선전하는 자본주의적인 광고 대신 뱅크시류의 반자본주의적·평화운동적인 광고가 등장한 것이다. 기성미술에서는 없는 발상의 유쾌함과 표현의 신선함이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그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비주류의 순수성, ‘초심’을 지키는 것이다.

『뱅크시, 월 앤 피스』(뱅크시, 위즈덤 피플, 2009)는 내가 지금까지 리뷰를 쓴 책 중 글자가 가장 적다. 정확하게는 뱅크시의 작품집이며 그의 단상이 조금 곁들어져 있는 책이다. 2005년까지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그가 던지는 블랙유머에 절로 즐거워진다. 뱅크시의 그림이 즐겁지 않다면 스스로를 한물간 세대라고 조금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 웃어야 한다. 알랭 드 보통은 “이해할 수 없는 대상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세련된 자세는 웃는 것”이라고 했다. 한때 새로웠던 것이 낡은 것이 되는 일은 자연의 섭리이자 역사의 섭리다. 낡은 것은 웃으며 새로운 것에게 길을 양보하고 그 상황을 즐기는 도리밖에 없다. 원치 않는 나이를 자꾸 먹으며 조금씩 낡아가는 나의 눈에 날아와 박힌 뱅크시의 낙서. “나이를 먹는다고 대화의 질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진숙씨는 러시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 작품에서 느낀 감동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미술의 빅뱅』의 저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