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부검하면 돌 맞던 시절, 법의학 개척한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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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문국진·강창래 지음
알마, 268쪽, 1만7000원

1960년대 한강 백사장에서 여자 변사체가 발견됐다. 주검의 턱에는 뚜렷한 치흔(이빨 자국)이 남아있었다. 근처에는 블록을 찍어내는 곳이 있었다. 경찰은 인부들 중 범인이 있을 거라 보고 좀 수상해 보이면 무조건 쫓아가 ‘빨리 불라’며 몽둥이를 내리쳤다.

 하지만 법의관 문국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잡혀온 이들 중에는 시체에 남은 치흔으로 만든 석고모형과 일치하는 치아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여자의 남편이 용의자로 지목됐다. 석고모형과 치아가 일치했다. 범인이었다. 이 사건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법치의학자’가 들어오게 된 계기가 됐다.

 문국진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치흔을 가지고 과학적인 증명을 하지 않았다면, 남편이 범인인 줄 알았겠어?” 고문을 당한 누군가 거짓자백으로 누명을 썼을 거란 얘기다.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관이자 국내 대학원 법의학교실의 창립자인 문국진 박사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인터뷰어 강창래가 그와 나눈 대화를 인터뷰집으로 묶었다.

 요즘은 미국 드라마 ‘CSI’ 등으로 과학수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국과수가 창립되던 1950년대에 법의학은 생소한 분야였다. 고문으로 범인을 ‘만들어내는 일’이 쉬운 방법이었기에 권력을 가진 이들이 부러 멀리한 탓이 컸다. ‘두벌죽음(주검에 손을 대는 일)’을 금기시하는 문화 때문에 대중을 설득하는 일도 어려웠다. 부검을 하려다 유족이 휘두르는 도끼에 맞을 뻔한 일도 있었단다. 그럼에도 그 험난한 길을 택한 이유는 뭘까.

 “증거는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으니까.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니까. 억울한 사람이라면 돈을 들여서 변호사를 댈 필요도 없는 거요. 법의학이 공정하게 집행되기만 한다면.”

 책에는 문 박사의 삶과 그가 겪은 기묘한 사건이 탐정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녹아있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묵직한 주제는 울림이 크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60여 년 전 그를 법의학의 세계로 이끌었다던 책의 한 구절이 가슴에 남을 것이다.

 ‘사람에게 생명도 중요하지만, 권리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 임상의학이라면, 사람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은 법의학이다.’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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