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구책 발표 파장] 버티기… 협상여지 남겨

중앙일보

입력

현대그룹이 28일 밝힌 입장은 한 마디로 정부와 채권은행단의 요구를 대부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현대의 입장' 이란 자료에서 제시한 여섯개항은 현대측이 지난 25일 구조조정 방안으로 내놓은 기존 내용과 바뀐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진전이 있다면 충남 서산농장의 활용 방안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금방 임자가 나서기 어려운 큰 땅이며, 현재 농지인 이 땅의 용도변경안이 제기될 경우 또다른 특혜 시비마저 일 수 있다.

현대자동차측에서 적극 추진한 것으로 알려진 정주영 명예회장의 현대자동차 지분(현재 6.9%)을 현대정공과 현대자동차가 3%씩 인수하는 방안도 '현대의 입장' 이란 자료에서 빠졌다.

아니나 다를까 금융감독위와 외환은행이 즉각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용근 금감위원장은 나서 "현대가 추가적인 자구방안을 다시 내놓을 것으로 안다" 고 말했고, 외환은행 부행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현대의 입장' 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현대그룹이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언론사에 배포한 자료에 대해 주채권은행이 따지고 나온 것이다.

이같은 정부와 채권은행의 분위기를 감지한 현대 관계자는 40분여 만에 "28일 발표한 자료는 최종안이 아니다" 며 "정몽헌 회장이 일본에서 귀국하는 대로 이달 말까지 다시 협의해 더 조정할 수 있다" 고 말해 추가 협상 여지를 남겨놓았다.

현대건설이 자구책으로 제시한 서산농장(3천1백만평)은 팔지 않는 한 자구책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할 전망이다.
농사용으로 허가받았기 때문에 개발한다는 것은 정부가 용도를 변경해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고 매각이 쉬운 것도 아니다.

동아건설의 김포 매립지처럼 정부가 사들이는 방식 외에는 임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장부가액은 6천4백억원이나 용도가 농지인 점을 감안하면 공시지가는 이보다 낮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는 축산.원예.과수 등 영농사업의 다각화와 함께 ▶안면도와 연계한 종합휴양지 개발▶유럽연합(EU)전용공단 유치 및 배후단지 조성 등의 개발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용도변경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현대건설 내부에서도 "활용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은 용도를 바꿔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얘기인데 지금 그게 가능하겠느냐" 며 "구체적 계획없이 일단 덩치 큰 물건을 내놓아 성의를 보이자는 차원 아니겠느냐" 고 말했다.

현대건설과 함께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은 현대상선은 28일 또다른 해명자료를 통해 올해 매출만도 5조원에 이르는 등 전혀 문제가 없다고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자금난은 어디까지나 현대건설만의 문제이며, 나머지는 그룹 차원에서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는 또 정주영 명예회장의 퇴진은 계열사 이사직 포기로 이미 끝난 얘기라고 주장했다.

외환은행이 27일 제시한 우량 계열사 매각 문제는 현대전자의 통신과 액정박막표시장치(LCD)부문을 분리한 뒤 매각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한때 알려졌다.

그러나 이 문제는 28일 외환은행이 스스로 어려운 문제로 거두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28일 정부는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을 내세워 현대를 하루종일 압박했다.
현대는 오후 8시에야 '현대의 입장' 이란 자료를 언론사에 돌렸는데, 금융감독위와 외환은행이 즉각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현대 사태는 주식시장이 열리지 않는 27, 28일을 별 소득없이 보내 29일 시장이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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