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박찬호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숙제, 제구력

중앙일보

입력

94년 빅리그 진입. 올해로 풀타임 메이저리거 4년째, 15승투수. 그리고 20승을 바라보는 투수.

박찬호의 경기를 지켜볼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박찬호는 과연 그의 메이저리그 경력과 메이저리그 전통명문팀의 제2선발투수라는 위상에 걸맞는 투구를 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글쎄?'

박찬호의 투구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이런 말을 한다. '불안하다'

그렇다. 박찬호는 여전히 불안하다. 빅리그에 입성하던 지난 94년에도 그랬고, 15승으로 최고의 시즌을 보냈던 지난 98년에도, 그리고 올해도 그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지 않는 한 언제나 우리는 박찬호의 경기를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사실, 박찬호의 구질과 구속 자체로만 본다면 메이저리그의 대타자들을 상대하기에 전혀 눌리지 않는다. 한 개 한 개가 모두 위력적인 볼들이다. 메이저리그 야구 전문가들도 이점은 인정한다.

그렇다면 박찬호의 경기를 지켜보며 불안감을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제는 제구력과 볼배합 능력이다. 박찬호는 시속 150km가 넘는
공들을 쉽게 뿌린다. 아무리 메이저리그의 강타자들이지만 시속
150km대의 공을 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박찬호는 그들에게 곧잘 안타와 홈런을 허용한다. 메이저리그에는 시속 130km대의 공을 던지는 투수들도 많다.

속도로 치자면 우리나라 고등학교에 다니는 투수들도 그 정도는
던진다. 하지만 그런 구속을 가지고서도 빅리거 생활을 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제구력이다. 적재적소에 한치의 오차 없이 마음먹은 대로 뿌릴 수 있는 제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볼배합능력이다. 볼배합능력은 완급조절 능력과 타이밍조절 능력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투수는 계속 같은 구속의 볼을 던지거나 같은 곳에 공을 던져서는 안된다.

타자들을 잡기위해 무조건 스트라익만 던져서도 안된다. 또한 빠른 볼만을 던져서도 안된다. 만약 이런 식으로 투구를 한다면 타자들은 아무리 빠른 공이라도 곧장 적응해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공을 날려보내게 된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위로 때로는 아래로, 때로는 스트라익으로 때로는 볼로....

이런 식으로 요리하듯이 적절히 섞어서 타자들을 잡아내는 능력이 투수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던질 것인가하는 능력이 바로 볼배합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흔히들 투수는 테크닉보다도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기도 한다.

이런 능력은 후천적인 학습(사회화=훈련)으로 터득되기도 하지만 타고난 감각도 있어야 한다. 박찬호에게는 아직 이런 능력이 완전히 갖춰졌다고 볼 수 없다.

이점이 우리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박찬호를 사랑한다.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마침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우뚝 선 그를 우리는 아낀다. 부패하고 믿을 수 없는지도층에 염증을 느낀 우리들 모두는 박찬호를 이 시대의 영웅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우리들 곁에 불안한 영웅으로 다가오는 것은 결코 원치 않는다. 불안함이 편안함으로 바뀌는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들은 앞으로도 계속 그를 지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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