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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굴욕 … ‘Aa2 → A2’ … 무디스, 신용등급 단번에 3단계 강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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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이탈리아 재무장관 줄리오 트레몬티가 무디스의 신용 강등 하루 전인 4일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 상념에 젖어 있다. 일반적으로 신용평가회사들은 등급 발표에 앞서 해당 국가 재무부에 미리 등급 변화를 알려준다. [AFP=연합뉴스]

“그리스가 잽이면 이탈리아는 훅이다.” 유로존(유로 사용권) 재무관료들이 요즘 자주 하는 말이다. 두 나라 위기가 유로 체제에 주는 충격이 그 정도 차이라고 한다. 이런 이탈리아가 5일(한국시간) 심상찮은 상황을 맞았다.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이탈리아 신용등급을 Aa2(AA)에서 A2(A)로 낮췄다. 단숨에 세 단계나 떨어뜨린 것이다. 그러고도 앞날은 여전히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탈리아는 지난달 19일에도 강등당했다. 그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였다. S&P는 이탈리아 등급을 A+에서 A로 낮췄다. 결과적으로 무디스는 이탈리아 등급을 S&P와 같은 수준으로 맞춘 셈이다. 무디스가 이탈리아에 매긴 등급은 유로존의 변경국가인 에스토니아보다 한 단계 낮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영국 런던 자금시장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이번 이탈리아 강등이 2009년 그리스를 떠올리게 한다”고 보도했다. 그해 10~12월 사이에 무디스·S&P·피치가 그리스 등급을 낮췄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스는 무릎을 꿇고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이날 무디스도 “투자 심리가 더 나빠질 수 있어 이탈리아의 자금시장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디스가 에둘러 표현했지만 구제금융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이미 이탈리아는 유럽중앙은행(ECB)에 기대어 연명하고 있다. ECB는 올 7월 이후 이탈리아 국채를 대거 사들이는 방식으로 가격 하락을 막아주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탈리아는 이달 말까지 400억 유로를 갚아야 한다. 그러나 경기 둔화로 세수가 줄어 갚을 형편이 아니다. 새 국채를 팔아 조달한 자금으로 그 빚을 갚을 수밖에 없다. 채권시장에서 이탈리아 위기가 표면화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그리스나 포르투갈은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시장 금리)이 연 7%를 넘자 이자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구제금융을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이 7%를 넘어서면 위기 신호라는 얘기다. 이날 이탈리아 국채는 5% 중반대에 머물렀다. ECB의 사주기 덕분이었다.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이탈리아는 너무 커 유럽이 구제하기 힘든 나라(too big to rescue)”라고 말하곤 했다. 실제 이탈리아는 국가 부채만도 1조9000억 유로(약 3002조원)나 된다. 그리스보다 다섯 배 이상 많은 빚을 짊어지고 있다. 이런 이탈리아를 구제하기 위해 유럽은 재정안정기금(EFSF) 4400억 유로를 조달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기금 조달은 아직 진행형이다.

 유럽의 구제작전도 때를 놓치고 있다는 평이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지난 4일까지 이틀 동안 룩셈부르크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으나 이탈리아 구제는커녕 그리스 채권 은행들의 고통분담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유로존이 아직 준비하지도 못했는데 이탈리아 신용 강등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이런 순간 이탈리아 위기가 본격화하면 유로 체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나마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시중은행 자본확충 방법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이 시장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어줬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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