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심사 - 동료 봐주기’ 학술지 7종 퇴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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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경희대·숭실대 부설연구소와 한국전자상거래학회 등 학술단체가 발행하는 학술지가 논문 심사를 부실하게 한 것으로 드러나 한국연구재단이 선정하는 등재지(登載誌)·등재후보지에서 퇴출됐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이화여대·한국외국어대 등 주요 대학 부설연구소의 등재(후보) 학술지 역시 해당 대학 연구진이 제출한 논문은 90% 이상 실어주는 등의 문제가 적발돼 대거 경고 조치를 받았다. 경고 조치를 받은 학술지는 40개에 이른다.

 교수들은 등재(후보)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해야 연구 성과로 인정받는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예산 지원에 쓰이는 대학별 교수연구 실적도 등재(후보)지 기준이다. 하지만 국내 학술지의 논문 심사와 관리가 엉터리인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끼리끼리 밀어주는 연구업적 부풀리기를 막을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조전혁(한나라당) 의원이 3일 교과부와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2011년 학술지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경희대 한의학연구소가 발행하는 ‘오리엔탈 파머시(Oriental Pharmacy)’와 숭실대 한국평생, HRD연구소의 ‘평생교육·HRD’ 등 학술지 7종에 대한 등재(후보)지 지정이 취소됐다. 한국연구재단이 올 3월부터 최근까지 국내 등재·등재후보지 2059종 가운데 505종의 2009~2010년 논문 심사·관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오리엔탈 파머시는 2년간 심사했다고 밝힌 논문 252건 중 61.5%에 달하는 155건의 심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심사를 맡은 교수들의 서명이나 도장이 없었고, 심사비 지급 내역도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특히 이 학술지는 경희대 소속 연구자가 낸 논문은 100% 실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옥외광고학연구’(한국옥외광고학회)도 같은 기간 논문 294건을 심사했다고 대장에 기록했지만 실제 심사 여부는 한 건도 확인되지 않아 등재후보지 자격이 박탈됐다. 내년부터 이들 부실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은 연구 성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경고를 받은 40개 학술지는 앞으로 같은 문제점이 또다시 적발되면 등재(후보)지에서 탈락하게 된다.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소, 연세대 국학연구원, 고려대 철학연구소, 성균관대 인문과학연구소,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이화여대 이화사학연구소 등이 발행하는 학술지는 해당 대학 연구진이 투고한 논문의 90% 이상을 학술지에 실어줬다.

 조전혁 의원은 “등재(후보)지가 교수 채용·승진 등 업적 평가에 쓰이다보니 1998년 56종이던 것이 현재 2000여 종으로 급증했다”며 “소수 연구자들이 모여 학술지를 만든 뒤 자기 대학 논문을 손쉽게 실어주는 등 연구 성과를 높이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학술지의 관리가 허술한데도 이를 총체적으로 관리할 책임이 있는 한국연구재단은 제대로 감시하지 않고 있다” 고 말했다.

 일부 학술지는 한국연구재단이 논문의 질 관리를 위해 게재율이 낮을수록 점수를 높게 주자 ‘관리용’ 논문을 제출하는 방식까지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과부 학술진흥정책 자문위원인 박경미 홍익대 교수는 “일부 학술지는 대학원생이 만든 습작성 논문을 제출한 뒤 편집장이 심사위원들에게 ‘관리용’임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게재율 기준을 맞추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업적평가 때문에 교수들이 등재(후보)지에 논문을 싣기 위해 사활을 건다”며 " 국내 학술지에는 함량 미달 논문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프랑스문화예술연구’는 같은 심사자의 서명이 논문별로 달라 자료를 허위로 작성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김성탁·김민상 기자

◆등재(후보)지=한국연구재단(옛 한국학술진흥재단)이 등재 또는 등재후보로 선정한 학술지. 최근 3년간 연 1회 이상 연속으로 학술지를 발행한 학술단체가 신청할 수 있다. 재단은 연간학술지 발행 횟수, 논문 게재율 등을 평가해 등재(후보)지로 인정한다. 이런 학술지에 논문을 실어야 연구성과로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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