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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설

택배로 전달받는 녹조근정훈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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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광섭
아주대 명예교수·산업공학

지난 8월 말로 모두 합쳐 37년 반(군복무 기간 포함)의 대학교수직을 마감하고 정년 퇴직했다. ‘만기 제대’이기는 하지만 때이른(?) 노인 대접을 받는 것이 어색해 못다한 후학들에 대한 교육과 연구, 봉사활동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면서 한 달여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재직했던 대학의 여직원이 “정부로부터 훈장이 내려왔는데, 전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대학(원) 교학과에 맡겨 놓았으니 알아서 찾아가기 바란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 뉘앙스는 ‘택배로 보낼 수도 있지만, 가끔 학교에 나오시는 것 같으니 와서 가져가면 서로 편하겠다’는 것이었다. 마치 교과부로부터 내려온 인사 명령서를 전달받은 기분이었다.

 정부로서는 학기마다 훈·포장을 받는 교(직)원의 숫자가 수백 명에 이른다고 하니 각 기관에 위탁해 훈장을 전달할 수밖에 없으리라. 훈·포장 기준은 ‘재직 중 징계를 받지 않은 사람들을 단순히 총 재직기간별로 급을 나누어 급수별로 수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퇴직연금증서에 근사한 종이장 하나를 더 붙여주는 정도로 권위가 없으니 주는 측이나 받는 사람 모두가 시큰둥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두 해나 십여 년도 아니고 인생의 반 또는 그 이상을 딴 곳에 한눈 팔지 않고 젊은 후학들과 함께 학문을 논하고, 그 제자들이 사회로 진출해 모두 한몫하는 대견한 모습을 보며 청출어람(靑出於藍)의 뜻을 되새기는 길을 걸어온 교육자로서는 깊은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하기야 요즈음의 교육현장을 보는 사회의 세태는 ‘참스승보다는 직업인으로서의 선생만 있고, 학생은 많지만 제자는 적다’는 현실을 강하게 부정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부 교직자의 연구비 부정, 논문 표절 시비 등이 언론에 회자돼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모습을 보면서 동업자 중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도 하지만 모든 교육계를 황폐한 것으로 폄하하는 것도 참아내기 어렵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말은 애초 바라지도 말아야 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옛이야기지만 교육자와 꼿꼿한 선비들이 합당한 대우와 존경을 받아야 이 나라의 교육이 바로 서지 않을까.

 필자는 지난 8월 가르치던 제자들과 후배 교수들에게 정년퇴임 기념 고별 강연을 하는 자리에서 “교수가 진정으로 제자를 사랑하고, 학생들이 교수를 믿고 사랑하는(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따뜻한 대학사회가 돼라”는 당부를 하고 정든 캠퍼스를 떠났다. 지금의 내 심정은 직원으로부터 전달받은 ‘녹조근정훈장’을 총장을 통해 정부에 정중하게 돌려 드리고 싶은 자괴감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김광섭 아주대 명예교수·산업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