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모 “나는 아직 중수에 불과 … 막 고수의 방에 들어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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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가수 김건모. 서울 방배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가수는 무대에서 모든 걸 보여주는 사람이다. 앞으로 5년은 블루스 음악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건모(43)는 벼락이었다. 1990년대가 문을 열자 김건모라는 벼락이 번쩍였다. 그의 음악은 사람들 사이에 한 순간에 내리 꽂혔다. 꼭꼭 씹어먹듯 불러대는 그 목소리에 감전되지 않은 이가 드물었다. 김건모는 막무가내로 음악이었다. 그 김건모가 올해로 데뷔 20년째다. 최근 20주년을 기념해 13집 앨범을 발표했다. 신곡 8곡이 담긴 CD 1장과 기존 히트곡을 추린 2장의 CD가 포함됐다. 3000장 한정으로 5장짜리 스페셜 앨범도 발매됐다. 1번부터 3000번까지 고유 번호가 매겨진 이 앨범은 이미 예약 판매가 완료된 상태다.

지난달 30일 서울 방배동 작업실에서 김건모를 만났다. 그는 갓 나온 스페셜 앨범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앨범 속지엔 스물여섯 김건모와 마흔셋 김건모가 나란히 담겨 있었다.

 -20년 음악인생이 고스란히 담겼군요.

 “이거 참…. 잘 믿어지지가 않네요. 내가 저 앨범의 주인공이란 게 도무지 안 믿겨요. 어딘가 좀 낯선데요.”

 그러면서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당혹감과 안도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20년이란 묵직한 세월이 한꺼번에 밀려오니 그럴 만도 했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은 ‘자서전(自敍傳)’이다. 동명의 타이틀곡도 수록됐다. 자신의 히트곡 제목을 잇대어 노랫말로 만들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잠 못 드는 비 오는 밤에 기타치고 노래했지/첫인상 나 아직 못 잊는 내 첫사랑….’

 그래, 가수 김건모의 자서전은 이래야 한다. 음악과 삶이 한 덩어리인 그는 노래로 삶을 기록한다.

 #첫인상

 김건모의 생애 첫무대는 신승훈 콘서트였다. 91년 겨울이었다. 갓 1집을 낸 신인가수 김건모가 게스트로 무대에 섰다.

 -첫 무대가 기억나세요.

 “그럼요, 생생하게 기억나죠. 피아노를 치려는데 열손가락에서 땀이 줄줄 나는 거에요. 손가락이 미끄러져서 연주를 끊고 다시 시작했을 정도였어요.”

 첫 무대에서 떨었을지언정 그가 한국 가요계에 남긴 첫인상은 강렬했다. 솔(soul)의 감성이 흘러 넘치는 그의 목소리는 우리 대중음악판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다. 미국 팝가수 스티비 원더와 그의 음색을 비교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닌 게 아니라, 또랑또랑 고음을 내지르는 모양새가 꼭 스티비 원더를 닮았었다.

 “제가 음악을 하면서 마음에 품었던 사람이 딱 두 명 있어요. 스티비 원더와 레이 찰스죠. 그 두 사람이 내가 가야 할 음악의 길이었어요. 지난 20년간 두 사람의 음악에 어떻게 하면 김건모의 색깔을 덧입힐까를 고민해왔던 것 같습니다.”

 #스피드

 

그의 성장 속도는 무서웠다. 1집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뒤 발매된 2집 ‘핑계’는 180만 장을 훌쩍 넘겼고, 3집 ‘잘못된 만남’은 280만 장이 팔려 한국 기네스에 올랐다.

 당시 그는 4장 연속 플래티넘 음반을 냈다. 그런 그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김창환 프로듀서와의 결별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김건모는 “기획사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며 4집부터 직접 앨범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성적이 시원찮을 때가 많았다. 두 사람은 13년 만인 2008년 재결합했다. 이번 13집도 김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했다.

 “인기란 게 참 놓기 힘든 끈이에요. 그런데 그 끈을 딱 놓아버리면 마음이 편해지죠. 노래할 때나 스타고 가수지 무대에서 내려오면 다 똑같은 사람이거든요.”

 데뷔 20주년에 들어선 올 초 그는 뜻하지 않은 시련을 겪었다. MBC ‘나는 가수다’ 재도전 논란이다. 그는 “꼴찌를 하고 재도전 논란에 휩싸이면서 사실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내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단다.

 “20주년에 딱 맞춰서 시련이 닥친 게 잘 됐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20주년 앨범도 더 열심히 준비할 수 있었고요.”

 #핑계

 이번 13집 앨범은 김건모표 음악을 단정하게 정리했다. ‘어제보다 슬픈 오늘’의 발라드 감성과 ‘피아노’의 솔 감성 등이 반듯하게 맞물린다. 다음 달 4일 서울 올림픽홀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전국 투어 콘서트에서 그 감성의 향연이 펼쳐진다.

 -노래가 한층 편하게 들리던데요.

 “편하게 들리겠지만 녹음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저는 아직 중수(中手)에 불과해요. 20년쯤 되니까 이제서야 고수(高手)들의 방에 들어서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이런저런 농을 던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결혼 하고 싶지 않냐”고 물으면 “신이 좋은 여자는 안 주셔서 음악만 붙들고 있다”고 답하는 식이다. 이런 핑계는 다행스럽다. 지금껏 그랬듯 음악 기둥 하나만 붙들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올해로 20년째, 그는 막무가내로 음악이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플래티넘 음반=100만장 이상 팔린 개별 음반을 뜻한다. 50만장 이상은 골드, 200만장 이상은 더블 플래티넘 음반이라고 부른다. 김건모는 모두 5장의 플래티넘 음반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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