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제때 제대로 작동 않는 금융 시스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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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재술
딜로이트안진 대표이사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번 금융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감독 시스템은 물론 기업 지배구조와 외부 감사인의 역할 등 다양한 부문에 걸친 제도 개선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제발 이번만은 근본적 해법을 찾게 되기를 바라지만 뒷맛이 개운치만은 않다.

 재발 방지와 이를 위한 제도 개선은 어느덧 큰 사건의 말미를 장식하는 사후약방문이 됐다. 그러나 구호만 요란할 뿐 본질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각종 제도와 시스템이 당초 설계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번 저축은행 사례만 해도 그렇다. 금융감독당국이 저축은행 감독 시스템의 도입 취지에 따라 제때 제대로 검사했다면 불법 대출과 부실 규모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고,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자체 위험관리에 충실해야 할 저축은행의 내부 감사도 본연의 목적은 소홀히 한 채 단기적 경영 현안 해결에 치우쳤다. 외부 감사인 또한 저축은행의 부실 규모를 제대로 짚어내기에 충분한 인력과 시간을 투입하지 못했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막힌 곳을 뚫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각 주체들의 활동을 저해하는 장애요인을 찾고 이를 제거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올 상반기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에 대한 대대적 경영진단을 통해 불법 대출과 부실을 적발해냈다. 그렇지만 당국의 인력 규모를 감안할 때 매번 이런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현실이 그렇다면 외부 감사인을 활용해 공동 검사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늘 뒷말이 무성한 공기업 사장 인사 역시 시스템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장추천위원회라는 제도가 있지만 실질적 인사권은 청와대나 정부 부처에서 행사하고, 추천위는 거수기 역할에 그친다. 진정 해법을 원한다면 자격 있는 추천위원을 위촉하고 그들에게 실질적 권한을 주면 된다.

 사외이사제 운영도 마찬가지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행에 필요한 하부 운영규정이나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미비하다. 사외이사 자리가 교수들의 부수입거리나 특정 인사의 은퇴 후 소일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운영이 필수적이다.

 최근 10여 년 사이 우리나라의 제도 도입사는 화려하기까지 하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하면서 각종 법률과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는 금융 선진화 방안을 포함, 경제 전반에 수많은 제도와 개선안을 도입했다. 그러나 화려한 외양에 반해 내실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무엇보다 새롭게 등장한 각종 제도와 시스템이 본래 설계된 의도와 취지에 따라 작동하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무언가를 빨리빨리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제도를 정착시키고 제대로 실행하려는 노력은 미흡하다.

 이런저런 제도를 도입해 얼마간 운영하지만, 맞지 않는다 싶으면 미련 없이 폐기하고 다른 시스템을 찾는다. 이 점에서 이웃 일본은 우리와는 자못 다르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데 지나치리만큼 신중할 뿐 아니라 한번 도입한 제도를 지키려는 의식이 강하다.

 압축성장기에는 이러한 접근법이 용인되기도 했다. 빨리 도입하되 적용에는 상당한 융통성을 부여하는 문화가 나름의 이점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진국 진입을 겨냥하는 지금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각 정당과 정부 부처에서는 새로운 정책과 제도 개선안을 찾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찾는 노력의 절반이라도 이미 시행 중인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쏟았으면 한다. 유권자의 표심을 사는 데도 이만한 묘책은 없다.

이재술 딜로이트안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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