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페르미연구소 입자가속기 ‘테바트론’ 오늘 퇴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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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바트론에 딸린 두 대의 검출기 중 하나인 CDF. 건물 3층 높이에 무게가 6000t에 달한다.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인근의 바타비아. 이곳에 있는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에서 30일 오후 2시(현지시간) 특별한 ‘은퇴식’이 열린다. 7월 퇴역한 우주왕복선과 더불어 미국 ‘거대 과학(big science)’의 상징으로 불리던 입자가속기 테바트론(tevatron)의 폐쇄 행사다.

 테바트론은 둘레가 6.28㎞에 달하는 초대형 입자가속기다. 2009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충돌기(LHC)에 ‘왕좌’를 내주기 전까지 세계 최대의 입자가속기로 군림했다.

페르미 연구진은 테바트론을 이용, 1테라(tera, 1조) 전자볼트(eV)로 가속시킨 양성자와 반(反)양성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을 해왔다. 우주 생성 때의 상황을 재현, 당시 만들어진 입자들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1995년 12개의 기본 입자 중 유일하게 발견되지 않았던 톱쿼크를 찾아냈고, 이후엔 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일명 ‘신(神)의 입자’인 힉스(Higgs)를 찾는 연구를 선도해 왔다.

 미 정부가 이런 테바트론을 퇴역시키기로 한 것은 ‘과거의 영광’보다 ‘새로운 미래’가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테바트론은 크기, 충돌 에너지 규모 등 모든 면에서 LHC에 뒤처져 있다.

 미 정부는 ‘고비용 저효율’의 힉스 입자 찾기를 포기했다. 대신 최근 빛보다 빨리 이동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중성미자(中性微子·neutrino), 우주의 90% 이상을 차지하지만 실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암흑 물질(dark matter) 연구 등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재 보유 중인 장비(총 3기) 외에 2014년을 목표로 뉴트리노 장비 2기를 추가 건설 중이다. 아르헨티나 피에르 오거 천문대 망원경에 설치 중인 세계 최대 디지털 카메라도 내년부터 본격 가동한다. AFP통신 등 외신은 ‘인류 지성의 개척자’ 페르미의 방향 전환을 ‘거대한 변화(big shift)’로 묘사하고 있다.

김한별 기자

◆페르미 연구소=1967년 설립됐다. 원래 이름은 국립가속기연구소였지만 노벨물리학 수상자 엔리코 페르미의 이름을 따 74년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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