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에 침입한 대학생 닷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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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大 3학년생인 요한 슐라일러-스미스와 그레그 쳉은 지난해 구내서점에서 교재 한 권을 구입하려다가 1백12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에 아연실색했다. 그들은 인터넷을 샅샅이 뒤진 끝에 마침내 60달러짜리 책을 찾아냈다. 구내서점의 터무니 없는 가격에 분노한 그들은 염가 교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웹사이트를 만들기로 했다. 몇 개월의 작업 끝에 지난해 8월 플라잉치킨스.컴(FlyingChickens.com)을 개설했다. 학생들이 구내서점의 가격 횡포로부터 벗어나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플라잉치킨스.컴은 지난 1월 성격이 유사한 라임스폿.컴(Limespot. com)과 합병해 현재 미국의 80개 대학에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

경제학도들은 대학 구내서점의 독점행위에 대항해 경쟁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다르다. 합병 이전의 플라잉치킨스는 하버드 기숙사 방에 본부를 두고 있었다. 하버드 교칙에는 ‘기숙생들은 기숙사 방에서 사업체를 운영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하버드의 그런 정책은 역사가 오래 됐고 또 합리적인 것으로 보였다.

학생들이 대학에 다니는 이유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지 장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손톱 미장원이나 마사지 치료센터(웨스트 텍사스 A&M大 기숙사에 설립됐다) 같은 것을 운영하는 친구와 방을 함께 쓰고 싶어하는 학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요즘 각 대학 캠퍼스에는 닷컴 열풍이 마치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대다수 기숙사에서는 마리화나보다 창업의 꿈을 불태우는 학생들이 더 많다. 하버드大도 이런 분위기를 감안, 지난달 캠퍼스 내 사업 금지 정책을 철회하고 기숙사 내에서 ‘적절한 수준의 사업활동’을 허락하는 교칙을 채택했다.

그러나 교칙과는 상관없이 많은 대학의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창업을 해왔다. 델 컴퓨터社는 설립자 마이클 델이 1983년 기거하던 텍사스大 기숙사에서 탄생했다. 또 빌 게이츠도 1975년 하버드를 중퇴하기 전 마이크로소프트社의 기초를 다졌다.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비밀리에 사업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교칙을 고수하고 있다. 뉴스위크의 요청으로 미국 학생직업관리위원회가 10개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공식적인 여론조사에서 대다수 학교가 기숙사 내에서의 ‘상업활동’을 금지하는 정책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런 교칙들은 이미 디지털 이전 시대의 유물이 돼버렸다. 당시만 해도 기숙사 벽장에 싸구려 택배 상품들이 쌓여 있는지를 감시하는 정도로 학생 사업가들을 적발할 수 있었지만 전자상거래가 발달하면서 단속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컴퓨터와 장시간 씨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기숙사 사감들은 그들이 리포트를 쓰는지, 사업계획을 세우는지 구별할 수 없다.

그러나 하버드大 학생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지난해 여름 매트 에벨과 앤드루 청은 기숙사 방에서 밤 늦게까지 ‘바보들을 위한 사업 계획’(Business Plans for Dummies)이라는 책을 보며 사업을 구상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단 학사일정과 온라인 장터를 제공하는 포털 사이트 칼리지빈스.컴(CollegeBeans.com)을 개설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자신들의 사업을 기숙사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우선 우편물은 캠퍼스 밖에 있는 한 학생 단체 사무실에서 받아봤다. 학교 우체국측이 그들에게 날아드는 엄청난 양의 공인회계사무실의 홍보 우편물에 대해 의아해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전자우편도 자신들의 하버드大 전자우편 주소대신 일반 무료 전자우편 서비스 계정을 이용했다. 그러나 에벨은 웹사이트 작업은 기숙사 방에서, 직원회의는 기숙사 공동 휴게실에서 한다. 에벨의 룸메이트들은 잦은 업무회의에도 싫지 않은 눈치다. 온통 닷컴 얘기뿐인 대화내용에서 영감을 받은 그들 역시 창업을 고려하고 있다.
데이트 상대를 찾아주는 데이트사이트.컴(Datesite.com)의 에드 베이커와 세 명의 룸메이트도 같은 전략을 사용한다. 우편은 임대한 사서함을, 사업상 통화는 기숙사 전화대신 휴대폰을 이용한다. 그러나 그들은 1년 이상 하버드의 정책을 충실히 따랐다. 베이커는 “우리 사이트는 이용자가 많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광고를 게재하지 않는 것은 하버드의 정책을 존중해 본격적인 사업체로 발전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교칙이 수정된 지금도 사업 방침을 바꿀 생각이 없다. 많은 이용자들을 확보한 뒤 보다 영리지향적인 운영자들에게 사이트를 매각하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다. 지난해 하버드를 졸업한 한 그룹도 이 전략으로 성공했다. 그들의 데이트 사이트 더스파크.컴 (TheSpark.com)은 올해 수백만 달러에 매각됐다.

칼 쇼그린과 그의 동업자들은 지난해 트랜스포미스 LLC를 창업할 때 하버드의 옛 교칙 때문에 독창적인 작전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온라인 데이터 관리를 돕는 소프트웨어의 베타 버전을 발표하자 투자 의향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사무실에 한번 들러서 안면이라도 익히고 싶다는 것이었다. 곤란한 일이었다. 박사과정 학생인 동업자 옴리 트롭은 “사무실이 기숙사 방이고 직원이 단 세명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회의를 주로 근처 음식점에서 열었다. 그러나 주식회사로 등록하자 업무 회의의 공식적인 의사록이 필요했다. 그들은 하버드 내 트롭의 연구실에서 회의를 해왔지만 회사 의사록에는 캠퍼스 밖에 있는 아파트에서 회의를 한 것으로 기입했다. 쇼그린처럼 학부생인 또다른 동업자 알렉스 로이드는 “학교측이 우리 프로젝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만한 꼬투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이들 전략 중 다수는 불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더스파크의 공동설립자 엘리 볼로틴은 한 동업자가 회사 업무에 하버드 전자우편을 사용하다 적발됐을 때 그저 엄한 훈계를 들었을 뿐 다른 조치는 없었다고 말했다.

해리 루이스 학장은 하버드 교수단에 보내는 메모에서 오랫동안 느슨하게 시행돼온 정책을 이제 와서 강화하는 것은 불공평할 뿐 아니라 기숙사 내 대다수 인터넷 업체가 기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기숙사 내 사업금지 정책을 철회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학교측은 교칙이 관대해진 요즘도 학생들이 학교의 자원(인터넷 계정·전자우편·학생명부·도서관의 책 등)을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일리노이大(어배너 샴페인 캠퍼스) 같은 학교들은 학생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정보의 양을 기준으로 삼는 사업방지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1일 5백 메가바이트의 상한선을 넘는 학생은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저작권이 있는 음악, 또는 비디오를 무단 배포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상한선을 두 번 넘을 경우 그 해에는 학교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다.

하버드大에서 완화된 정책이 갖는 의미는 학업과 창업 중 택일해야 하는 학생 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캠퍼스 사업 현장에 뛰어든 4학년생 스리람 다스는 예전의 교칙 아래서는 “중퇴를 해야 창업이 쉬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업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는 것이 반드시 학교 정책 때문은 아니었다. 회사가 번창하면 학업은 뒷전이 되게 마련이다. 로이드·트롭·쇼그린은 지난해 10월 엑셀론이라는 회사에 트랜스포미스를 매각한 후 그 합병회사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기 위해 휴학했다.

그러나 학교의 정책이 달라졌다고 해도 대학생들이 학업도 잘 하면서 사업도 잘 하려고 하는 것은 30대들이 직장과 가정에 모두 충실하려고 발버둥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힘든 일일 것이다. 다스와 그의 동업자인 4학년생 피터 위드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아이비벤처스.컴(ivyventures.com·학생들을 위한 기업 인큐베이터 및 투자기금)을 설립중이다. 하버드大의 미래 사업가들은 이들의 도움으로 회사를 진짜 사무실로 이전하는 시기를 앞당기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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