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ISSUE]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명품 브랜드의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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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브랜드의 ‘스타 파워’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서 나온다. 샤넬의 카를 라거펠트, 루이뷔통의 마크 제이컵스는 각각 자신의 브랜드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가 되니, 브랜드 입장에서 고마운 존재다. 물론 ‘스타’의 속성상 추락 위험도 있다. 올 2월 파리의 한 카페에서 ‘반유대주의’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존 갈리아노 같은 경우다. 그래도 패션 업계에선 자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스타로 만들겠다는 욕심을 버릴 순 없다. 스타를 모셔오느냐, 스타로 키우느냐, 방법은 다르다.

스타 모시기

마크 제이컵스

카를 라거펠트


카를 라거펠트는 전형적인 ‘스타 모시기’의 예다. 프랑스 브랜드 샤넬은 설립자인 코코 샤넬이 사망한 1971년 이후 라거펠트가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되기 전까지 12년 동안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영업 면에서도 ‘불안하다’는 우려가 제기되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당대의 스타 디자이너 라거펠트를 영입해 지금껏 ‘샤넬=카를 라거펠트’라는 공식을 성공적으로 유지 중이다. 라거펠트는 50년대 피에르 발맹의 보조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 뒤 70~80년대에는 클로에·펜디 등 명품 브랜드와 계약을 맺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스타로 발돋움했다.

 ‘스타 디자이너’ 전략을 구사하는 또 다른 브랜드는 루이뷔통이다. 97년 여성 기성복 분야에 처음 진출한 루이뷔통은 당시 미국 패션계에서 각광 받던 마크 제이컵스를 ‘모셔왔다’. 미국의 대중 브랜드 페리 엘리스의 수석 디자이너로 각종 패션상을 휩쓸고 있을 때였다. 그를 영입하기 위해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직접 나섰다고 한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스타성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출시한 ‘뱅’이라는 향수 광고에 옷을 모두 벗은 채로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존 갈리아노는 1991년 대중 음악 스타였던 카일리 미노그의 의상을 제작하면서 대중에게 스타로 떠올랐다. 역시 아르노 회장의 눈에 들어 95년 LVMH 그룹 산하 브랜드인 지방시로 영입됐다가 이듬해 디오르로 자리를 옮겼다.

스타 만들기

‘상대적으로 조용한 디자이너’를 데려와 스타로 키우는 경우도 있다. 영국 브랜드 버버리의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그렇다. 베일리는 2001년 서른 살 나이에 당시 145년 전통의 버버리를 책임지는 디자이너가 됐다. 이 때 그는 ‘스타’이기보다는 촉망 받는 차세대 디자이너 그룹에 속해 있었다. 그는 버버리의 이전 디자인을 혁신하는 동시에 이전보다 ‘패셔너블’한 ‘버버리 프로섬’ 브랜드를 내놨다. 버버리 프로섬의 성공으로 베일리는 이제 패션계의 스타로 대접받고 있다.

 아르노 회장과 함께 전 세계 명품업계를 양분하는 프랑수아 피노 페페에르(PPR)그룹 회장도 ‘스타 만들기’ 전략에 동참했다. 그는 지난해 2월 요절한 영국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의 자리를 매퀸의 ‘오른팔’이었던 세라 버턴에게 물려줬다. 버턴은 재능 있는 디자이너이긴 하지만 ‘천재’로 평가 받았던 매퀸의 ‘보조자’에 머물 수 밖에 없었던 인물. 하지만 그는 ‘알렉산더 매퀸’이란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면서 ‘스타 되기’에 시동을 걸었다. 올 4월 ‘세기의 결혼식’이라 불린 영국 윌리엄 왕자 부부의 혼인식에서 신부 케이트 미들턴의 웨딩 드레스를 맡으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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