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모욕’으로 떴어요 … tvN 코미디 빅리그의 ‘아3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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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욕’으로 인기몰이 중인 예재형(왼쪽)과 이상준이 문규박을 들고 있다. 자신들의 개그는 “절대 짜고 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두운 무대에 누군가 어슬렁어슬렁 등장한다. 조폭 두목이다. 숨죽인 객석을 둘러보던 그가 갑자기 한 관객의 무릎 위에 털썩 앉는다. 아, 오늘의 ‘송 실장’이 지목됐다. 이제부터 송 실장은 무대에 올라 ‘조폭’의 부하가 돼야 한다.

두목이 “어제 그 놈들 어떻게 됐지?”라고 물을 때 우물쭈물하다간 혼이 난다. 두목이 엉덩이로 춤을 추면 따라 해야 한다. 어수룩한 송 실장의 행동에 웃음이 뻥뻥 터진다. 그러나 누가 언제 지목 당할지 알 수 없는 법. “종로 한석봉 나와”라는 부름에 아무도 일어나지 않으면 호통이 떨어진다.

 “우리집이 떡집한다 그러면 손들자!”

 tvN ‘코미디 빅리그’의 ‘관객모욕’ 코너가 인기다. ‘코미디 빅리그’는 유세윤·안영미·박준형 등 유명 개그맨 11개 팀이 개그배틀을 펼치며 승점을 쌓아나가는 프로그램으로 17일 첫 방송됐다. 최종 우승팀에게 상금 1억원이 주어진다. 최고 시청률 4.46%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케이블 1위를 달린다.

왼쪽부터 예재형, 이상준, 문규박.


 2주 연속 1위를 한 팀은 유세윤이 이끄는 옹달샘. 그런데 이들보다 더 주목 받는 팀이 있다. ‘관객모욕’으로 연속 2위에 오른 ‘아3인(이상준·예재형·문규박)’이다. 25일 오후 그들을 만났다. 약속시간에 전화를 걸어와 “화장실에 숨어있다”는 말로 나타난 이들. 조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였다. 연속 2위 소감부터 물었다.

 “저희는 인지도도 없고, 쟁쟁한 팀들이 많아서 중간만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2등을 한 거에요. 놀랐죠. 사실 제가 해놓고도 웃기긴 해요.”(이상준)

 “리허설 때 우리 바로 앞이 옹달샘이었는데 대스타니까 부담이 컸어요. 이젠 박준형 선배가 우리를 탐내죠. 하하”(문규박)

 ‘관객모욕’의 반응이 좋자 인터넷 기사가 쏟아졌다. 대부분 신인이라는 수식이었다. “신인이 아닌데 그렇게 소개되니까 속상했죠. 개그를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쉰 적이 없는데….”(이상준)

 이상준과 예재형이 SBS ‘웃찾사’를 통해 데뷔한 건 2004년. ‘이건 아니잖아’ 등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이름을 알리진 못했다. 중고신인인 셈이다. 정식 인터뷰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코미디 빅리그’ 제안을 받았을 때 작정을 했다. 이번엔 꼭 이름을 알리겠노라고. 이상준이 서울예대 동기인 예재형과 2006년 데뷔한 문규박을 끌어들여 팀을 만들었다. 팀명은 ‘아줌마 여기 떡볶이 3인분이랑 인지도 좀 주세요’의 줄임말이다. 밥상 위에 고기가 되자는 ‘고기반찬’, 개그계의 쓰나미가 되자는 ‘쓰나미’ 등 수많은 후보가 ‘인지도’ 앞에서 물러났다.

 ‘관객모욕’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온 걸까. “술자리에서 ‘나다 싶으면 일어나자’라는 말을 하면 엄청 웃기더라고요. 그런데 이걸 무대에서 우리끼리 하면 안 웃겨요. 관객을 직접 겨냥할 때, 뜨끔하면서 웃음이 터지겠다고 깨달았어요. 사람은 뭐든지 그 상황에 닥쳐야 제대로 느끼잖아요.”(이상준)

 주변에선 관객참여 개그는 뻔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했다. 그때 김석현 PD가 힘을 불어넣었다.

 “그거 재미있겠는데? 해봐.”

‘관객모욕’은 관객을 조연으로 세우고 뭔가를 시키며 웃음을 강요했던 기존 관객참여형 개그와는 달랐다. 관객(송 실장)을 아예 주인공으로 삼았다. 시청자의 감정이 이입되는 주체가 확실하다. 그렇다고 부담스럽지도 않다. 송 실장이 입을 굳게 닫고 있어도 촘촘한 시나리오가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위험한 순간도 있다. 관객이 애드립을 하면 준비한 개그를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웃겼다. “공연장에서 저희가 쌓아온 내공 덕분에 잘 넘긴 것 같아요.”(문규박) 서로에 대한 신뢰도 한몫 했다. “이 친구들이랑 같이 개그를 한다는 게 정말 행복하니까, 무조건 믿어요.”(예재형)

 호흡을 잘 맞출 송 실장을 골라내는 비법도 있다. “정자세로 앉아있는 사람, 좀 우직해 보이는 사람을 찍는 거죠.”(예재형) 즉석에서 파트너를 골라야 하니 언제나 다른 팀보다 초긴장 상태. 아3인을 떨리게 하는 건 또 있다.

 “저희를 알리고 싶어서 시작한 건데, 왠지 송 실장 인기가 더 올라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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