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성폭행 범죄가 집유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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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지난 3월 23일 오후 9시. 집에서 인터넷 채팅을 하던 지적장애인 김모(15)양은 평소 채팅으로 알고 지내던 김모(21)씨로부터 “기차여행을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집을 나와 약속장소로 나간 김양이 정작 가게 된 곳은 경기도 시흥에 있는 김씨의 집이었다. 김씨는 게임에서 진 사람이 맥주와 소주를 섞은 폭탄주를 마시자고 한 뒤 김양을 성폭행했다. 김양은 그로부터 7일간 김씨의 집에서 악몽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집을 나온 정신지체 장애아를 일주일에 걸쳐 성폭행한 김씨는 곧 경찰에 체포돼 법정에 서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9부(부장 배준현)는 김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가 성에 대한 관념이나 인식이 희박한 상태를 이용한 점 등은 엄벌할 필요가 있지만 피고인이 잘못을 뉘우치고 있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수정된 성범죄 양형 기준에 따르면 13세 이상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강간죄를 저지른 경우엔 징역 5년에서 8년의 실형이 선고될 수 있다. 하지만 ▶가해자가 진지한 반성을 하고 ▶범행이 우발적인 경우 ▶가해자가 고령이고 ▶자수를 했을 시에도 집행유예 선고의 참작 사유가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형선고가 내려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황지성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장은 “현행 양형 기준에 따르면 솜방망이 처벌이 될 수밖에 없는 요인들이 많다” 고 지적했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사는 “장애인 성폭력은 장기간 다수에 의해 이뤄지는 데다 일반 성폭력 피해자와는 달리 피해를 호소하거나 거부의사를 곧바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양형 기준 개정 등 정부의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여중생을 성폭행한 20대 4명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도 최근 있었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 최상열)는 중학생 박모(12)양을 3시간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백모씨(20) 등 4명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있고 초범이라는 점과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주부 김모(36)씨는 “법원의 이런 솜방망이 처벌도 아동 성폭행 사건을 키우는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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