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살 해군이병 신동혁 ‘을지문덕함’ 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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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신동혁(10)군이 24일 을지문덕함 조타실에 앉아 키를 만져 보고 있다. 해군 장교가 꿈인 신군은 이날 메이크어위시재단의 도움으로 을지문덕함을 견학하고 명예승조원이 됐다.

하얀색 해군복을 보자 창백했던 열살 소년의 볼이 발갛게 변했다. 무표정했던 얼굴에는 엷은 웃음이 번졌다. 해군 장병들은 해군복을 입은 소년의 가슴에 이등병 명찰을 달아줬다.

 꼬마 이병은 신동혁(10)군. 네 살 때 갑자기 다리가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7년째 투병 중이다. 항암치료 때문에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작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다. 학교 수업보다 병원 내 ‘병원학교’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 동혁이의 가장 친한 친구는 병상에서 갖고 놀던 ‘레고’ 블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혁이는 레고로 멋진 해군 함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장래 희망도 자연스레 ‘해군 장교’가 됐다. 난치병 아동의 소원을 이뤄주는 단체인 한국 메이크어위시재단은 지난 7월 동혁이의 사연을 접하고 세 달간의 준비 끝에 지난 24일 동혁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준비했다. 해군 제2함대 소속 을지문덕함 견학이었다.

 이날 해군 장병들이 도열한 가운데 마스크를 쓰고 을지문덕함에 오른 동혁이는 함장인 김홍석 대령에게 “필승!”이라고 거수경례를 했다. 김 대령은 동혁이에게 명예 승조원 임명장을 주고 배 구석구석을 안내했다. 평소 백혈병 때문에 가벼운 운동에도 숨이 차서 힘들어 하던 동혁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좁고 가파른 계단과 사다리를 씩씩하게 올라갔다. 조타실에 앉아 선장처럼 선글라스를 끼고 키를 돌렸고 망원경으로 적의 동향을 살피기라도 하듯 먼바다를 바라봤다. 모스 부호로 다른 함정과 교신을 하기도 했다. 건너편 함정에서 먼저 불빛으로 “신동혁군 환영합니다”라는 모스 부호를 보내오자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어머니 정효성(40)씨는 “동혁이가 치료를 받기 시작한 뒤로 이렇게 밝은 모습은 처음 본다”며 뿌듯해했다. 동혁이는 앞서 2함대 소속 정인양 제독(준장)도 만났다. 정 제독은 “우리는 열심히 나라를 지킬 테니 동혁이는 병과 싸워 이겨라. 나중에 꼭 해군으로 만났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한 시간 정도 을지문덕함을 둘러본 동혁이는 버스를 타고 부대 내 ‘서해수호관’으로 이동했다. 동혁이는 전시된 함정 모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형형색색의 풍선이 달린 시청각실에 들어서자 영상 편지가 흘러나왔다. 영상을 통해 동혁이의 교회 친구들과 가족들이 완쾌를 빌었다. 여전히 미소만 짓는 동혁이에게 한 봉사자가 물었다. “동혁아, 기분 어때?” 동혁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최고예요!” 지난 3월 골수이식을 받은 동혁이는 치료를 마치면 완쾌돼 내년에 초등학교 5학년으로 복학할 예정이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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