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월드카 프로젝트는 난국타개용?

중앙일보

입력

최근 세간을 시끄럽게 한 현대자동차의 월드카 개발 프로젝트 발표의 전말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지난 5월7일 일요일 현대자동차가 일본의 미쓰비시와 독일의 다임러크라이슬러와 함께 월드카를 개발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인 8일 아침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지가 다임러크라이슬러측 관계자의 말을 빌어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하고 나섰다. 그러자 국내 언론들은 현대가 최근 루머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룹의 신용도를 높이기 위한 한건주의의 결과라고 들고 나왔다.

이어 이틀 뒤 미쓰비시는 소형차를 개발하는 문제에 대해 현대와 협의를 진행했다고 발표해 어느 정도 위신은 살려 주었다. 미쓰비시의 가와소에 사장은 구체적이고 상세한 내용까지는 협의되지 않았다며 현대와 다임러크라이슬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3사가 협의할 상황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월드카 개발과 관련한 주도권 다툼의 차원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개발비 분담문제 때문에 서로 신경전을 벌인 결과일 것이라고 분석하는 이도 있다. 현대는 이에 대해 미쓰비시가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지배하에 있기 때문에 미쓰비시와의 협의는 곧 다임러크라이슬러와의 협의와 다름 없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정작 그 프로젝트의 대상인 월드카(World Car)
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라면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하는 자동차를 말한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아시아카(Asia Car)
다. 배기량 1천cc 정도의 ℓ카에 차체의 크기도 배기량에 비해서는 약간 큰 듯하지만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에서 팔릴 수 있는 차를 말한다. 당연히 연료 소비도 적어야 한다.

1ℓ당 25km를 달릴 수 있는 차라고 현대측이 말했는데 어쩌면 3ℓ카(3ℓ의 연료로 1백km를 달릴 수 있는 차:독일의 오펠 코사, 일본 도요다 프리우스 등 꽤 여러 종류의 모델들이 있다)
로까지 발전할 수도 있다.

이 월드카 전략은 이미 세계 유수의 자동차회사들이 10여년 전부터 구상해 온 모델. 좀더 좁혀서 이야기하면 21세기 최대 잠재시장인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먹힐 수 있는 차라는 얘기이다. 그런 차를 만드는 데는 분명 다임러크라이슬러보다는 현대자동차나 미쓰비시가 더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고급차 만들기만을 고집해왔던 벤츠나 미국 시장에서 잘 팔리는 3천cc 이상의 모델들만을 만들어 온 크라이슬러보다는 이미 국민차 개념의 모델들을 만들어 왔고 완성도가 높은 현대나 미쓰비시가 이런 류의 모델을 개발하고 만드는 데는 더 앞서 있다.

벤츠의 경우 스마트라는 미니카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 벤츠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발매 후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나 다시 수정하느라 고전하고 있다. 크라이슬러도 네온이라는 2ℓ급 모델이 있지만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인데 현대가 다임러크라이슬러 등과 손잡고 월드카를 개발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대의 월드카 해프닝은 세계 자동차업계의 M&A물결 속에서 자사에 대해 갖가지 불리한 소문이 난무하자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대형 프로젝트를 내세웠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또 경영진이 실무진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덜익은 프로젝트를 성급하게 발표하기로 결론을 내렸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거나 이번 사건을 통해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현대자동차의 위치가 그리 만만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의 갑작스러운 발표에 대해 처음 부인했던 다임러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 모두 월드카 개발에 대한 계획이 진행 중에 있음을 시인함으로써 무조건 현대를 궁지에 빠트리지는 않았다.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되는 내용이다. [이코노미스트=채영석 월간 모터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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