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클릭! 애널리스트 보고서] ‘만약 그리스의 디폴트가 발생한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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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재정위기가 해법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독일 등 지원국들은 그리스 지원 성과에 회의를 느끼며 자국 은행을 구제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분위기다. 그리스 또한 내심 대외 채무를 상환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을 수 있다. 그리스의 연간 국채 이자 지급액은 국내총생산(GDP) 증가분을 상회하고 있어, 이자 지급을 중단하면 더 높은 성장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디폴트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잠재 위험을 현실화함으로써 시장의 불확실성이 줄고 지원국들 입장에선 추가 자금 지원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러나 위기가 그리스에서 멈추지 않고 유럽 은행들의 위기로 이어지고 주변의 재정 위험국으로 전염되는 등 부정적 측면이 당분간 부각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최근 유럽 은행들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시가총액이 자기자본 가치를 밑도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최근 유럽 은행 주가 하락은 그리스 채권의 손실분 이상을 반영하고 있다. 즉 이번 위기가 그리스 디폴트 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각오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번 위기의 충격파는 2008년 리먼 사태 때보다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지금은 은행들이 실물경제와 시중 유동성, 자산시장 등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작아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디폴트 이후 은행들의 손실과 자본 축소 등이 전개되더라도 금융시장 전체와 실물경제에 미칠 악영향의 강도가 2008년 보다는 작을 것이란 얘기다. 다만 그리스 디폴트는 다른 재정 위험국들의 재정 개선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고, 이에 따라 글로벌 경제의 장기 저성장 구도는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은 어떨까. 단기 충격파는 어쩔 수 없겠지만 리먼 사태 때와 같은 은행 건전성 문제와 자금이탈, 원화가치 급락, 경기침체 등의 악순환으로 빠져들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정부의 철저한 관리 덕분에 국내 은행의 단기 외채는 150억달러 정도 줄었고, 전체 외채 중 단기 비중도 56%에서 40%대 초반으로 낮아졌다. 주식 및 채권 시장에서 유럽계 자금의 이탈은 당분간 어쩔 수 없겠지만, 전체 자본수지는 균형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전망이다. 원화가치의 하락 폭도 제한 적일 것으로 판단한다. 원-달러 환율이 1100원 선 이상으로 올라선다 하더라도 그렇게 오래 머물진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남유럽 사태는 국가 재정 건전성의 문제가 은행 위기로 확산되는 것인데, 글로벌 투자자들의 입장에선 결국 유럽 채권을 대체할 시장을 찾아야 한다. 한국의 중장기적인 국채 상환 능력에 대한 믿음에는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고유선 대우증권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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