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110) 영리한 엄앵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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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배우 신성일의 감독 데뷔작 ‘연애교실’(1971). 신인 신영일(왼쪽)과 나오미를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DJ와 손을 잡지 못한 신성일이 영화 제작으로 방향을 돌리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신성일의 아내 엄앵란이 아이디어를 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한 배를 타려는 시도는 좌절됐다. 한무협 장군이 나와 DJ가 만난 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한 장군을 만난 다음 날, 아침을 먹은 후에도 운전기사가 촬영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에게 “촬영 안 가?”라고 물었다. 나는 머리 복잡한 게 싫어 평소 스케줄을 챙기지 않는 스타일이다. 운전기사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형수님(엄앵란)이 촬영 없다는데요.”

 “그래?”

 촬영이 없다니 얼마나 좋은지. 무스탕을 몰고 질주할 생각에 신이 났다. 엄앵란에게 드라이브 하자고 한 후 대전을 향해 엑셀을 밟았다. 휘발유를 넣기 위해 추풍령에 들렸다. 추풍령에서 “내일도 촬영 없다”는 엄앵란의 말에 부산까지 내달렸다.

 우리는 부산 극동호텔에서 저녁을 했다. 극동호텔을 운영하는 동아대 김경준 이사장 내외도 동석했다. 엄앵란이 식사 후 방에 들어와 고백했다. 요 며칠 일어났던 설명 불가한 사건에 대해. 한 장군에게 나와 DJ가 만난 걸 알리고, 내가 정치판에 뛰어드는 걸 막아달라고 한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아내는 나와 DJ가 만난 다음 날, DJ의 오른팔인 김상현 의원의 서대문 집을 찾아갔다. 김 의원의 부인은 엄앵란의 숙대 1년 후배였다. 엄앵란은 “우리 남편은 영화배우로 마감할 사람이다. 김 의원과 만나지 않게 해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고 한다.

 나는 넋을 잃고 들었다. 그녀는 내가 불쌍해 보였나 보다.

 “여보, 정치 못하게 돼 섭섭하지요…. 당신 감독하고 싶어했잖아요. 돈 댈 테니 감독하세요.”

 귀가 번쩍 뜨였다. 평소 메가폰을 한 번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신인감독이 쏟아지면서 “레디, 고”를 쉽게 부르는 경향이 있었다. 그에 대한 나의 오기였다. 난 태연한 척 말했다.

 “뭐, 작품이 있어야지.”

 엄앵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영화 소재를 내놓았다. 제목은 ‘연애교실’. 부모가 예전 연인 사이였던 두 가정의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부모의 숨겨진 관계가 노출되면서 어쩔 수 없이 헤어지고 만다는 이야기였다. 제법 구미가 당겼다.

 우리는 곧장 영화 제작에 착수했다. 우리 집에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김정현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가 이대 연극반에서 연출을 맡고 있던 정하연을 소개시켜주었다. 드라마 작가로 유명해진 정하연의 시나리오 데뷔작이 ‘연애교실’이다.

 우리는 신인을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도 가졌다. 남자 주연으로는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정인식을 선발했고, ‘신영일’이란 예명을 붙여주었다. 조감독이 국립극장 앞에서 길거리 캐스팅한 신인을 여자 주연으로 삼았다. 그녀가 나오미다. 엄앵란은 워커힐 인근 운전학원과 워커힐 수영장·승마장에 두 남녀를 직접 태우고 다니며 훈련시켰다. 이들 부모 역으로 김지미와 신영균이 출연해 무게감을 더했다.

 1971년 5월 27일 서울 국도극장에 나의 감독 데뷔작 ‘연애교실’의 간판이 걸렸다. 그 해 한국영화 흥행 2위에 올랐고, 이후로도 내가 십여 편의 작품을 감독·제작하는 발판이 됐다. 엄앵란의 영리함과 깊은 속이 빛나는 대목이었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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