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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기도 전 동난 1만장 … ‘델리스파이스’ 대단하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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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5년여 만에 7집 앨범 ‘오픈 유어 아이즈’를 발매한 록밴드 델리스파이스. 왼쪽부터 이요한(키보드)·윤준호(베이스)·김민규(기타·보컬)·서상준(드럼).


이를테면 이 밴드의 진실은 앨범 재킷의 ‘불꽃 글씨’에 있다. 29일 발매 예정인 델리스파이스 7집 앨범 ‘오픈 유어 아이즈(Open Your Eyes)’ 말이다. 재킷에 적힌 ‘DELiSPICE(사진)’란 글씨는 어딘가 수상쩍다. 컴퓨터 그래픽이라기엔 다소 어설프고, 사람이 썼다기엔 유난히 정교하다.

 “실은 밴드 멤버들과 스태프들이 직접 쓴 글씨에요. 성산대교 북단에서 불꽃을 들고 허공에다 글씨를 휘저었죠. 어딘가 사람 냄새가 나지 않으세요?”(김민규·보컬·기타)

 그래, 델리스파이스는 그런 밴드다. 음악에서 사람 냄새가 진동한다. 1995년 결성 때부터 그랬다. 한국 ‘인디밴드 1세대’로 분류되는 이 밴드는 16년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매만지고 깎은 정교한 음악을 들려줬다. 아니다, 실은 ‘16년간’이란 표현은 수정돼야 한다. 근래 5년간 공백이 있었다. 2006년 6집 앨범을 낸 뒤론 마주치기 힘들었다. 드문드문 록페스티벌에 얼굴을 비추긴 했어도 앨범은 물론 단독 공연도 없었다.

 “가지고 있는 걸 소진하고만 있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무언가 새롭게 채우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지난 5년간 가끔 무대에 오르긴 했어도 솔직히 좀 부끄러웠습니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걸 들고 나오지 못했으니까요.”(윤준호·베이스)

 이번 7집은 지난 5년간의 성찰이 녹아 든 앨범이다. 새 멤버(키보드 이요한·드럼 서상준)도 영입했다. 델리스파이스 특유의 매끈한 선율을 지키면서도 과감한 실험이 돋보인다. 그래서일까. 예약 주문으로만 벌써 1만 장이 팔렸다. 인디밴드로선 이례적 수치다.

 앨범은 시작부터 강렬하다. 첫 곡 ‘오픈 유어 아이즈’부터 아찔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몰아친다.

 “‘델리스파이스 맞아?’란 느낌이 들 정도로 전자음을 극대화했습니다. 첫 트랙은 강렬하게, 뒤로 갈수록 점점 델리스파이스 본연의 색깔이 나오도록 구성했죠.”(김민규)

 이번 앨범은 한 편의 완결된 이야기처럼 들린다. 트랙과 트랙 사이에 음이 이어지는가 하면, 곡 사이의 정적(靜寂)까지도 일일이 계산해서 넣었다. 음악의 연결성을 강조한 짜임새다. 김민규는 “앨범을 순서대로 들어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델리스파이스는 이런 밴드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정교하게 음악을 매만진다. 슬쩍 지나쳐선 모를 수 있다. 작심하고 음악에 코를 박아야 느낄 수 있다. 델리스파이스가 풍기는 사람 냄새를, 그 음악에 묻어나는 사람의 향기를.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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