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강의 새 틀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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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막 수익성 평가법이라는 회계학 과목을 신청했다. 알다시피 딱딱한 과목이다. 그러나 수업 첫날, 지루한 강의도 없고 강의계획서도 내주지 않는다. 당신은 지금 튜링 컴퓨터라는 가상회사의 직원이다. 튜링은 델·컴팩·게이트웨이社의 공격을 받고 있다. 튜링의 최고경영자 캐시 매킨타이어는 영국의 휴대용 컴퓨터 제조업체 사이언社를 인수하면 회사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묘책을 찾아야 한다. 튜링의 미래, 그리고 당신의 미래가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비디오게임처럼 보이지만 교육학자들은 이를 ‘실제 문제에 근거한 학습법’이라고 부른다. 특히 하버드 의대에서 자주 쓰는 방식으로 실제 상황에 대처하게 하는 훈련법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터넷 가상대학 유넥스트.컴(UNext.com)의 핵심적인 교수법이기도 하다.

유넥스트는 이미 사업 시작 전에 1억 달러를 쓸 정도로 다른 경쟁자보다 훨씬 많은 돈을 투입하고 있다. 이 사업에는 5개 일류대(컬럼비아·스탠퍼드·시카고·카네기 멜론·런던 정경大)와 노벨상 수상자 3명, 여러 투자전문가(마이클 밀켄, 오러클社의 래리 엘리슨 등)가 참여한다. 지금 월스트리트는 유넥스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메릴 린치社의 교육 시장 전문가 마이클 모는 “유넥스트야말로 최고의 인터넷 대학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유넥스트의 전문가들은 강좌당 1백만 달러에 이르는 돈을 쏟아부었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한 완전히 새로운 교육방법을 개척했다. 유넥스트는 올 여름부터 강의를 시작하며 앞으로 수백만 명이 등록할 것으로 내다본다.

유넥스트의 설립자는 기업가이자 교육자인 앤디 로젠필드(48)로 그가 목표로 삼는 고객층은 두 종류다. 일류 대학에 다닐 수 없는 사람들과 이미 학위는 있지만 평생 학습을 통해 자기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사람들이다. 유넥스트는 우선 기업재무 같은 경영자 과정을 제공할 것이며 이후 다른 분야까지 확대할 것이다. 이로써 세계 각지의 기업체 직원 수천 명을 끌어모을 생각이다. 직원들은 강의 자료를 얻기 위해 주요 경영대학원에 도움을 청했다. 컬럼비아大가 이익 5%를 현금이나 유넥스트 주식으로 받고 유넥스트가 실패하면 2천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맨 처음 제휴했다.

로젠필드 팀은 교수의 일방적인 강의로 이뤄지는 수업방식을 완전히 바꾸려 한다. 유넥스트의 ‘과목’ 하나는 30시간 정도의 수업을 한다. 강좌 4∼5개가 모여 ‘관련 과목군’을 구성하며 이것은 일반 대학의 한 학기에 해당한다(수업료는 일류 경영대학원 한 학기 수업료인 약 2천6백 달러의 80% 정도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나 포장회사 오언스-일리노이 같은 고객이 올 봄에 시작되는 강의에 시범적으로 일부 직원을 등록시켰다. 유넥스트는 최종적으로는 MBA 등 학위도 수여할 예정이다.

이제 수익성 평가법이라는 과목을 신청했다고 가정해보자. 25명 정도를 단위로 반이 편성될 것이다. 이 강좌에는 두 종류의 교수진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이 코스를 만든 전문가들이고 다른 하나는 연구업적보다는 가르치는 능력으로 뽑힌 석·박사급 시간강사들이다. 이 강좌는 컬럼비아大 마이클 커셴하이터 교수와 교육심리학자인 유넥스트의 돈 워덤이 이끄는 연구팀이 만든 것이다. 이 과목의 수강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자기의 전략을 펴고, 정보를 캐내며, 해결책들을 종합한다. 워덤은 “우리는 수강생에게 ‘다음에는 이것을 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 과목 수강은 모험에 참가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유넥스트는 과목 종류를 늘리는 동시에(과목 수는 올해 말까지 1백 개에 이를 것이다) 온라인 교육에서는 분명히 결여된 것들, 예를 들어 교수와 면담하는 시간, 스터디 그룹, 수업 후의 술자리 토론 등을 어떻게 사이버 세상에서 재현할 것인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로젠필드는 “강의만으로 줄 수 있는 것이 한정돼 있다. 수업에만 들어갔다면 그 교육이 얼마나 공허할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유넥스트의 로릴리 새들러 기술실장은 “우리는 사회적 측면의 보강에 주력한다. 혼자 동떨어져 있다고 느낄 바에야 교과서 한 권 사는 것이 낫다”고 덧붙였다. 유넥스트는 IBM 및 로터스社의 기술팀과 함께 학생들을 서로 이어줄 방법을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다. 학생 개개인의 컴퓨터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모두를 컴퓨터 모니터상에 한데 묶을 수 있는 광대역 비디오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유넥스트는 다른 주목거리도 마련해 놓고 있다.

강사는 어느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전자우편을 보내고 누가 뒤처지는지 보여주는 거미줄 같은 도표를 볼 것이다. 각 링크에 얼마나 클릭했나 보여주는 ‘클릭-스트림 분석’이라는 소프트웨어 기술로 강사들은 학생이 강의 내용을 봤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강사가 이것을 알게 되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학생에게는 아직까지 보지 못한 자료를 찾도록 도와주거나 늦기 전에 도움을 주는 전자우편을 보낼 수 있다. 애플 컴퓨터社의 에니오 오메이는 이런 체계가 있으면 학생이 10만 명이라도 모두에게 두루 관심을 쏟을 수 있다면서 “학생이 어디까지 공부했는지,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에 다른 대학은 줄 수 없는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더 위쪽에는 유넥스트 대학 학장이 강사를 감시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있다. ‘신의 스테이션’이라는 별명의 화면에는 각 강사들이 학생을 얼마나 잘 관리하고 있는지 계속 나타난다.

유넥스트 앞에는 분명히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몇 주 전 중국 출장에서 있었던 것처럼 중국 교육부 관리들이 중국인 수백만 명의 유넥스트 강좌 신청 가능성을 물어 올 때는 좋았지만, 교과과정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엄청난 문제로 다가온다. 유넥스트에는 강좌를 계획·운영하는 1백50명의 교육 전문가와 정보기술 전문가가 있지만 불충분한 점을 메우기 위해 여전히 외부 인력에 의존하고 있다. 얼마 전 로젠필드의 친구가 “화면 문자를 음성으로 바꾸는 장치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로젠필드는 유넥스트 강좌는 시각장애인, 들으며 배우는 것이 더 효과적인 사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 등도 배려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얼마 전 로젠필드는 30명의 신입사원들과 대화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을 강조했다. 그는 실제 대학의 중요성도 강조해 온라인 교육계에 갓 입문한 전사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강한 어조로 “우리는 시카고·하버드·위스콘신·일리노이大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 형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세계 인구의 1% 정도만이 그런 일류대학에 다닐 시간과 돈·기회가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넥스트는 자기들이 모든 사람에게 이상적인 학교인 것처럼 가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머지 99%를 대상으로 삼을 뿐이다.

세계적인 컬럼비아大의 커셴하이터 교수 같은 사람은 유넥스트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의 강의는 짤막한 설명 비디오가 여러 개 마련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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