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튼튼하게 마음은 여유롭게 … 유기농의 미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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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듯한 느낌의 건축물로 유명한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는 어렸을 때 류마티스 관절염을 심하게 앓았다. 그의 부모는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아들을 위해 공기 좋고 물 좋은 시골로 내려갔다. 그 결과 가우디는 신체적 증상 완화와 더불어 뛰어난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다. 성인이 된 가우디가 아이를 떼놓고 출근하기 힘들었던 맞벌이 부모를 위해 과자 모양의 집을 지었다는 일화는 자연 속에서의 생활이 상상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한 사례다.

유기농 모종을 살피는 농부의 손. 유기농에는 생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연친화적 생산방식을 보호하자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중앙포토]

‘비료·농약 사용 않는 농법’ 그 이상을 의미

유기농은 과거에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농사 방법을 의미했다. 하지만 최근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생산형태나 생산을 포괄하는 의미로 확대됐다. 1986년 이탈리아에서 인공적으로 만든 패스트푸드에 반대하면서 시작된 ‘슬로 푸드(Slow Food)’ 운동의 핵심도 유기농이다. 생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연친화적 생산 방식을 보호하자는 뜻이다.

스트레스 해소 효과 강해

유기농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유기농은 인공적인 것을 벗어나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여유로움을 주고,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순기능을 한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정신건강중앙연구소에서 23개의 스트레스 상황을 대도시에서 자란 사람과 시골 출신 사람에게 주었을 때 예민도가 대도시 출신일수록 더 강하게 나타난 것은 환경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여주는 연구 결과다(『네이처 2011년』).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아이가 일일농장 같은 농촌 체험을 할 수 있다면 정신건강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그 이유는 도시에 있을 때 보다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도시의 회색빛이 아닌 자연의 다양한 색깔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만·성인병 예방에도 탁월

유기농 식품은 화학비료와 농약이 포함되지 않아 비만이나 성인병을 예방해주는 건강 효과가 있다. 음식 맛을 내기 위해 화학조미료 글루탐산나트륨(MSG)을 먹지 않고 자연식을 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뚱뚱해질 가능성이 3배 낮다는 연구 결과는 왜 우리가 유기농을 택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비만학지 2008년』).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대 연구진이 3년 동안 8~10세 어린이 1만2000여 명의 거주지와 비만도를 분석한 자료에서도 시골에 가까이 사는 아이가 도시 가까이 사는 아이보다 더 활동적이고, 비만율도 낮았다(『청소년 건강 저널 2010년』).

강동경희대병원 영양관리센터 이금주 센터장은 “한두 번 유기농 식품을 먹는다고 건강에 유익하다고 보긴 힘들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확실히 건강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권병준 기자

텃밭에서 기른 유기농 채소는 …

상추=상추 잎에는 진정 작용을 하는 ‘락투세린’ 성분이 포함돼 있다. 우울할 때 상추를 먹으면 한결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다. 철분과 필수 아미노산도 풍부해 갱년기 이후 여성에게도 효과적이다.

근대=카로틴·칼슘 함량이 높고 비타민B2도 많다. 식이섬유가 풍부해 배변을 돕고 피부를 매끄럽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겨자=추위를 견디는 성질이 강하고 어느 토양에서나 잘 자란다. 비타민A와 카로틴이 풍부해 눈과 귀를 밝게 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커리=칼륨·인·나트륨 함량이 많다. 쓴맛이 나는 인터빈이 들어 있어 소화를 촉진하고 혈관 건강에 도움이 된다.

로메인=로마의 영웅 시저가 좋아해 ‘시저스 샐러드’라고 불리기도 한다. 비타민C가 풍부해 매일 먹으면 피부가 촉촉해지고 잇몸을 튼튼하게 해준다.

세계유기농대회 조직위 김기영 대외협력단장

“유기농가 비율 0.8% … 수요 늘면 가격도 더 떨어질 것”


‘유기농은 생명이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제17차 IFORM 세계유기농대회’가 26일부터 10월 5일까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경기도 남양주에서 열린다. 세계유기농 한국조직위원회 김기영 대외협력단장에게 이번 대회를 유치한 의미와 유기농의 미래에 대해 들었다.

 -유기농 대회 유치 의미는.

 “농약을 조금만 덜 쳐도 ‘친환경’에 속한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무농약’ 대열에 속할 수 있다. 그 다음 단계가 ‘유기농’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유기농가 비율이 0.8%에 불과하다. 이번 행사를 통해 사람들이 유기농을 접하게 되면 본격적인 유기농 운동이 시작될 수 있다.”

 -우리나라 유기농의 미래는.

 “아직은 유기농 제품의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일종의 인큐베이터 역할이 필요하다. 실제 경기도에서만 친환경 급식에 유기농을 활용해 2500억원 정도의 새로운 시장이 생겼다. 이 외에도 ‘유기농=부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도 점차 바뀔 것이다. 유기농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 유기농 제품의 가격은 점차 떨어지고 그 결과 정책적인 변화도 나타날 것이다.”

 -유기농이 자녀들에게 건강 지킴이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프랑스에서는 학교 농장(일종의 교육농장)이 2400여 개나 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여기서 교육을 한다. 그만큼 유기농 환경은 자녀의 정신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 유기농 식품은 가공하면 미생물의 대사물까지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에 아무런 해가 없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건강지킴이가 될 수 있다.”

◆유기농=자연 본래의 생산력을 중시하는 방법. 농약을 쓰지 않고 우렁이를 논에 방사해 잡초를 제거하는 방법 등이 포함된다. 최근에는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생산형태를 포괄한 의미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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