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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설(世說)

‘키’가 아니라 ‘열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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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구법회
한글학회 정회원
전 연수중학교 교장

외래어와 외국어가 우리말을 잠식하는 비율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과거 ‘한자(漢字) 사대주의’가 ‘영어 사대주의’로 바뀌어 가는 것이 아닌지 염려된다.

 1980년대 후반 영어 열풍이 몰아치면서 우리말에 영어를 조금씩 섞어 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더니 요즘은 지구촌 시대라 하여 각 분야별로 영어이름을 지어 쓰는 일이 보편화되었다. 개인기업의 상호· 상품명은 물론이고 공공기관과 전철역까지 영어로 쓴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새로운 문명이나 현상의 경우도 우리말로 고쳐 쓰는 것이 바람직한데, 최근엔 이미 있는 우리말조차 외국어로 바꿔 쓰는 지경이다.

‘해피’를 넘어 ‘해피하다’는 말처럼 영어의 줄기에 우리말 접사를 붙여 쓰기도 한다. 아예 ‘상자는 박스, 열쇠는 키’로 둔갑해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국어 행세를 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1999, 종이사전)의 440만여 개의 낱말 중 9.2%의 서양외래어가 들어 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 조사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간 늘어난 신어(새로 생긴 말) 1690개 가운데, 서양식 외래어와 이를 일부 포함한 외래어까지 합치면 전체의 57.6%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국어사전이라고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겠는가. 신생 외래어의 급증은 결국 우리말을 오염시켜 그 특성과 순수성을 잃게 만든다.

 이제 ‘네티즌’을 ‘누리꾼’으로 바꿔야 한다. 가능한 것은 다듬은 우리말로 쓰도록 노력하고, 날로 늘어나는 신생 외래어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신생 외래어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귀화어로 만들어 쓰는 방법도 필요하다. 귀화어란 말 그대로 언어의 국적을 바꾸는 것이다. ‘남포’가 ‘lamp’에서 귀화하여 우리말이 되었고, ‘고무’는 ‘gum’에서 왔으나 지금은 그 뜻이 다르게 쓰인다. 지금은 남포나 고무신을 외래어라 하지 않는다.

 언어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우리 말글을 바르게 키우려면 모든 국민의 의지가 필요하다.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

구법회 한글학회 정회원, 전 연수중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