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민주주의를 위한 변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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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호 31면

언론자유가 보장되고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시스템 아래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든 국가가 비슷한 형태의 정부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미국·유럽인은 물론 한국·일본인들도 민주주의를 사랑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민주주의의 이상을 충실하게 구현하지 않고 있으니 문제라고 결론 내려도 되는 걸까. 민주주의 신봉자들은 큰 소리로 ‘예스(Yes)’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인 중국이 지난 수십 년간 눈부신 경제성장을 해왔고, 많은 중국인이 거기에 긍정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년쯤 중국에 살면서 내가 깜짝 놀란 것은 상당수의 중국인이 공개적으로 자기 나라를 비판하면서도 서구식 민주주의가 해결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인들은 뿌리 깊은 부패, 치솟는 부동산 가격, 불결한 음식과 약품에 대한 관리 부재 등 다양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불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결국 이런 걸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인들은 “어떤 정부도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낼 수 없고, 다른 형태의 정부를 도입한다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심지어는 “과연 민주주의가 최고의 정부 형태냐”고 말한다. 그들은 미국에서 기승을 부리는 범죄와 유럽의 금융위기, 수시로 바뀌는 일본의 지도자들, 한국에서의 격렬한 정치적 시위, 필리핀·태국의 부패 등 민주주의 국가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하긴,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도 중국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향유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국인은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대신 각자의 직업·가족·친지와 일상생활의 질에 대해 더 걱정한다. 그들은 정치 성향의 TV프로그램보다는 드라마나 데이트쇼를 시청하는 걸 더 좋아한다.

미국은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세워졌고 미국 헌법은 이 같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국가들도 억압적이고 부패한 정부로부터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민주주의로 이행했다. 따라서 그들에게 정부가 한 개 정당에 의해 지배된다는 건 과거의 나쁜 제도로 돌아간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시각은 다르다. 그들은 중국 정부를 옹호한다. 민주주의는 장점이 있지만 문제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으니 망가지지도 않은 (현재의) 제도를 고쳐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더 많은 정치 개혁과 자유를 원하지만 그게 정부를 때려 엎자는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잘 적응해 나가는 실용주의적인 정부를 원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인들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정부가 필요한지 결정하는 건 중국인 자신이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건지도 모른다. 중국인들은 다른 나라가 중국의 국내 정책에 대해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걸 기분 나빠 한다. 몇 달 전 차이나데일리에 실린 칼럼 하나는 중국인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한 기자가 중국 정부 관료에게 중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미국 정치인이 중국에 오면 언제나 미국 스타일의 민주주의를 외친다. 하지만 워싱턴을 방문한 중국 관료가 민주주의 대신 일당 체제를 미국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면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라고 물었다.

모든 나라는 그들의 주권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 그런 정부를 지키게 하라. 하지만 만일 중국인 대다수가 다당제 민주주의를 선호하지 않는다면 중국인들도 그들 나름의 제도를 만들어낼 권리가 있다.



톰 맥그리거 베이징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미국 출신 언론인. 중국 라디오 인터내셔널(CRI) 에디터를 역임했다. 한국에서도 6년가량 영자지 칼럼니스트로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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