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힘'에 칸 시선 집중

중앙일보

입력

지금 칸영화제에서는 그동안 우리 영화인들이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 쏟았던 땀이 하나 둘 열매를 맺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직 영화제(21일 폐막)중반이어서 한국 작품의 수상을 점치기는 성급하지만 현지 평론가들이 한국영화에 매기는 점수는 대체로 높고, 마켓에서도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후끈하다.

르 몽드지의 칸영화제 특집호를 보면 '춘향뎐' 을 경쟁부문에 올린 임권택감독과 '오!수정' 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 에 초청받은 홍상수감독을 대하는 눈길이 아주 곱다.

홍 감독을 "지난 5년동안 한국영화 발전의 궤적 그 자체" 라고 극찬한 것은 홍감독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996)로 데뷔한 이후로 줄곧 프랑스 영화계의 주목을 받아오던 터라 별로 놀랄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감독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감독중 한 사람이면서도 한국 바깥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이라고 한 평은 칸 영화제 수상까지도 예감케 한다.

그리고 임감독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제와 장르, 스타일을 자랑하는 한국 최고의 사실주의 거장" 이라고 덧붙였다.

'비평가주간' 과 '감독주간' 에 각각 초청받은 '해피엔드' 와 '박하사탕' 역시 연일 현지에서 발간되는 영화잡지의 리뷰난을 장식하고 있다.

'박하사탕' 은 '지난 20년 한국의 정치상황으로 인해 잃었던 인간적 순수함을 얼얼하게 그린 작품' (버라이어티), '정치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표현한 영화' (무빙픽처스)라는 평을 들었다.

영화 전문지 무빙픽처스는 또 미국영화와 경쟁을 벌이는 한국영화계가 '박하사탕' 의 이창동감독을 발견한 것은 커다란 수확이라고 덧붙였다.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 또한 짜임새 있는 구성과 깔끔한 영상이 돋보이는 작품'(무빙 픽처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 영화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은 마켓에서 더 실감난다.

올 칸영화제에 한국영화를 출품하고 있는 시네클릭.미로비전.강제규필름.CJ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들은 부스를 찾는 외국 바이어들의 상담에 응하느라 전화조차 제대로 받지 못할 지경이다.

아시아 각국 영화를 인터넷을 통해 판매한다는 목표를 잡고 있는 시네클릭의 김석훈 해외마케팅 팀장은 "한국영화 리뷰가 언론매체에 실리면서 방문객이 늘어나 하루 20건에 이른다" 고 말했다.

시네클릭 부스에서는 '박하사탕' '처녀들의 저녁식사' '아나키스트' 가 외국 바이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작품들이다.

독립영화 위주로 부스를 꾸민 미로비전은 '텔미 썸딩' '오!수정' '인터뷰' '여고괴담2' '반칙왕' 등 70여편을 전시하고 있다. 이 중 '여고괴담' 과 '반칙왕' 이 단연 인기가 높다. '

CJ엔터테인먼트는 '해피엔드' '섬' '춘향뎐' '노랑머리' 등 12개 작품을 내놓고 있다. 역시 비평가주간에 오른 '해피엔드' 와 김기덕 감독의 '섬' 이 인기 작품.

'해피엔드' 가 유럽과 일본 지역 바이어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반면, '섬' 에는 유럽쪽 관계자들이 몰리고 있어 흥미롭다.

'섬' 은 영화제 기간에 이탈리아 토리노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받기도 했다.

한편 14일 현재 경쟁부문에서 상영된 작품 중 가장 호평을 받고 있는 영화는 영국의 좌파 감독 켄 로치가 만든 '빵과 장미' 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는 멕시코 이민자들이 생존권을 확보하기위해 처절하게 싸워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켄 로치가 처음으로 미국에서 촬영한 영화.

이란의 20세 여성 감독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흑판' 도 주목을 끌고 있다.

이란의 오지 쿠르드족 지역에서 칠판을 짊어지고 학생들을 찾아다니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뛰어난 영상으로 포착했다는 평.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고르게 높은 점수를 얻은 켄 로치와 대조를 보였다.

이밖에 심리 스릴러물을 출품한 프랑스 감독 도미니크 몰은 등장 인물의 성격이 분명치 않다는 평이 많았으나 자국 평론가들은 호응을 보냈다.

미국 닐 라부트 감독의 '간호사 베티' 는 순진한 여성이 TV드라마에 나오는 미남 의사를 동경해 그를 찾아가는 이야기.

현대인들의 인간 관계를 냉소적으로 그리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연결이 매끄럽지않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얻었다.

한편 심형래 감독이 80% 가까이 다시 손질해 마켓에 내놓은 '용가리' 에 대한 반응은 기대에 못미치는 듯해 아쉬움을 남겼다.

어린이용 SF영화를 표방한 이 영화는 시행착오를 한차례 겪었으면서도 여전히 주인공들의 연기가 어설프고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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