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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신발산업 재도약

중앙일보

입력

한국이 스포츠화의 세계적인 연구.개발센터로 자리잡으면서 신발산업이 재도약하고 있다.

"나이키.리복.아디다스 등 세계 3대 스포츠화의 연구.개발센터가 모두 있는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한국신발협회 박연차(태광실업 회장)회장은 한국 신발의 강점을 기술력에 바탕을 둔 부품.소재산업이라고 강조했다.

10여년동안 시련을 겪으며 노동집약적인 부문은 떨어져 나가고 기술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됐다.

우수한 제조기술력과 연구.개발기능이 첨가돼 한국이 다시 세계 신발업계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신발은 1960년대 중반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단순제조로 출발했다.

80년대에는 세계 운동화 생산량의 50%를 차지했고, 90년 43억달러 수출로 전성기를 맞았다. 그런데 87년 이후의 급격한 임금상승이 신발업계를 강타했다.

가격경쟁력을 잃어 나이키 등 큰손들이 생산처를 대만과 동남아 등으로 돌렸다.

국내 생산라인은 1987년 7백84개에서 98년 1백60개 라인으로 급감했고, 수출액도 98년 8억달러로 전성기의 5분의1 이하로 급락했다.

정부도 신발산업을 사양산업으로 규정했고, 신발업계의 회생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제조기술은 해외공장에서 꽃을 피웠고, 한국 본사는 연구.개발 및 부품.소재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며 80년대말에 버금가는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한국신발협회는 올해 한국 신발업계가 해외에서 벌어들일 돈이 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전성기였던 90년보다 많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 크게 달라졌다. 90년에는 단순 임가공한 완제품을 수출했다.

이에 비해 올해는 완제품 수출 8억달러, 부품.소재 수출 20여억달러와 해외공장의 현지 직수출 20여억달러의 고부가가치로 구조가 바뀌었다.

나이키 등 해외 유명브랜드 회사가 디자인과 마케팅을 맡고 한국이 양산기술을 개발해 중국.동남아에 있는 해외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국제분업 체제가 형성된 것이다.

전세계에 퍼져 있는 나이키의 전문 생산공장은 50여개며 그 선두공장으로 세곳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비싼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 바로 경남 김해 태광실업이다.

나이키가 'T2' 로 부르는 태광실업의 강점은 뛰어난 제품 개발력이다. 디자인이 나오면 바로 신제품으로 만들어진다.

98년 설립한 연구개발센터 안 회의실에선 날마다 미국 오리건주 비버톤 나이키 본사와의 화상회의가 열리며, 신제품 개발에서 양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산정보를 같은 시간에 공유한다.

태광실업이 특히 자랑하는 것은 정밀 금형기술이다.

최근 신발 밑창은 세가지 기본 색상에 다양한 문양으로 만들며, 재질이 고무.스펀지 등 유연한 소재라서 다루기 힘들다. 태광은 이를 자유자재로 취급해 최고급 신발을 제작한다.

완제품 제조기술과 함께 한국 신발산업의 맥을 잇는 또다른 축은 30여년째 축적한 부품.소재기술이다.

하나의 신발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부품은 약 1백20가지이며, 소재도 다양해 원단만 해도 수백가지에 이른다.

신발 제조에는 섬유.화학.기계 등의 기반산업이 필요한데, 신발과 관련해선 한국이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국내 업체의 해외 생산공장은 물론 외국 회사들도 한국산 부품과 소재를 수입한다.

한국 신발의 우수성은 가격으로 입증된다. 세계시장에서 'Made in Korea' 는 다른 나라 제품보다 30% 정도 비싸다.

지난 4일 부산시 사상구 자유통상㈜을 찾은 독일인 바이어 안드레안 보본은 "신발 부품.소재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라고 말했다.

이같은 한국 신발산업의 재도약에 신발.피혁연구소가 소재.부품개발의 체계화.과학화로 큰 몫을 했다.

특수화 업체도 기술발전에 기여했는데, 성호실업(등산화).우연(사이클화).학산(테니스화).삼보화성(골프화) 등이 유명하다.

대부분 회사가 기업부설 연구소를 갖추고 신제품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부품업체 가운데는 성신신소재.데코 등이 인정받는다. 신발산업 분야의 전문인력 양성에도 시동이 걸렸다.

부산신발과학고등학교.경남정보대 신발공학과에 이어 올해 안에 동서대에 대학원 과정이 문을 연다.

문진복 경남정보대 교수는 "신발산업이 세계의 중심 자리를 확고히 하려면 설계 능력과 부품.소재부문에 대한 체계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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