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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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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중앙SUNDAY 국제·지식에디터

세계 5대 도서관인 뉴욕공립도서관(NYPL)이 올해 10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기획했다. 행사를 위해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제조했던 맥주를 한 맥주회사가 복원했다. 이 도서관은 워싱턴이 1757년 친필 작성한 ‘스몰비어(small beer)’의 레시피를 소장하고 있다. 스몰비어는 당밀로 만든 흑맥주다.

 워싱턴은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69명으로 구성된 선거인단 투표에서 100%의 지지로 당선됐다. 그런 워싱턴도 일종의 매표(買票) 행위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유권자들에게 맥주와 럼주를 제공했다. 미국이 아직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워싱턴이 버지니아 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다.

 민주적 정당 정치는 맥주나 막걸리가 오가지 않은 깨끗한 선거를 통해 정당들이 서로 정권을 주고 받으면서 발전해 왔다. 영국은 1762년·1763년, 미국은 1800년·1840년에 첫 번째와 두 번째 집권당 교체가 이룩됐다.

 민주주의의 대 선배인 영국·미국과 비교하면 딱 두 번 집권당 교체를 경험한 우리나라는 정당 민주주의의 ‘왕초보’다. 왕초보지만 세계 석학들은 우리가 선거로 두 차례 정권을 바꾼 것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막걸리 선거’나 일당 장기 집권이 우리 기억에서 희미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정당 정치가 우여곡절 속에서도 발전해 왔다는 증거다. 최근 범여권과 범야권의 서울 시장 후보들이 막상 여당·야당 입당을 거부하고 있다. 나름대로 꾸준히 발전하고 있던 우리 정당 정치에 대한 경고음이다. 현대 정당 정치에서 무소속의 득세는 예외적이다.

 문제는 이번 위기가 에피소드가 아니라 구조적인 것,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민주 국가에 공통적인 현상에서 유래한다는 점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지나치게 행정부 중심주의, 인물 중심주의로 흘렀다. 정당은 껍데기가 됐다. 정당인으로서 잔뼈가 굵은 보스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인물중심 정당정치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 우파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유럽형 사회민주주의로 나라를 끌고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미국의 이념 지형을 바꿀 수도 있는 정책들이 정당보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개인 프로젝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이다. 공화당은 그의 임기가 끝나면 모든 게 원 위치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게 미국을 위해 좋은 일인지는 모르지만 이는 또한 공화당 소속의 대통령이 이룩한 변화 또한 임기가 끝나면 말짱 도루묵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도 비슷하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지지자들 중 상당수는 상대편 당을 ‘사라져야 할 당’이라고 생각한다. 여당과 야당은 그런 생각을 즐기면서 은근히 부추겨 왔다. 그러나 상대편 당은 사라질 당이 아니라 서로 정권을 주고 받는 파트너 당이다.

 최근 독일 지방 선거와 덴마크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이 승리했다. 수년 전부터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에서 사회민주당은 ‘전후 최악’ ‘20세기 초 이래 최악’의 선거 결과를 맛봤다. 독일·덴마크에서 이룩한 승리로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컴백할 가능성이 커졌다. 유럽 정당들처럼 우리나라 여당·야당도 참담한 쓴맛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쓴맛 단맛을 교대로 맛보는 게 정당 정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정당 정치의 전성기는 없었다. 우리 정당들은 특정 정치인의 집권을 위한 도구로 기능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부터라도 여당과 야당, 여당과 야당의 지지 유권자들이 서로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정당 정치가 산다. 뭐니뭐니 해도 정당 정치가 프로 정치다. 정당이라는 제도는 정치의 연속성·예측가능성을 보장한다. 처음부터 매번 다시 시작하는 일이 없다. 유럽에선 정당 살리기를 위해 국제적인 연대가 중시돼 왔다. 우리 정당들도 스스로를 살리고 국제 정당 외교를 강화하기 위해 대외 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김환영 중앙SUNDAY 국제·지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