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하우 노트 - 거짓말·협박·강매 매뉴얼…손님 보고서 - 유인 대상 개인정보 빼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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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거마 대학생’의 필수품은 3~4 종류의 노트다. 불법 다단계 사업의 전략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노트를 통해 본 불법 다단계 사업은 한마디로 ‘사람 장사’다. 다단계 업체마다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크게 세 가지 종류의 노트가 있다. 우선 ‘텔 보고서’. 거마 대학생들은 합숙소로 돌아온 뒤 숙소와 인근 공원 등에서 친구들에게 전화공세를 한다. 통화가 끝나면 유인 대상자의 신상명세와 통화 내용을 노트에 빠짐없이 적는다. 이게 ‘텔 보고서’다. 상위 직급자는 거마 대학생들의 텔 보고서를 일일이 검사해 빨간색 펜으로 첨삭 지도한다. 대상자가 컴퓨터 자격증을 준비 중이라면 ‘다음 통화할 때 회사에서 학원비 40%를 지원한다고 해라’고 거짓말하라는 식이다.

 ‘소개자 추천서’도 있다. ‘손님여건 파악 보고서’ ‘C-report’ 등으로 부른다. 유인 대상자의 개인 정보를 차곡차곡 쌓아 둔 노트다. 대상자에게 취업을 권유해 관심을 보이면 그때부터 유인 대상자의 정보를 남김없이 모은다. 한 업체의 소개자 추천서에는 한 사람당 30개 이상의 개인 정보가 적혀 있었다. 혈액형, 학력, 군필 여부, 고향, 건강상태, 가정형편 등은 물론 돈이 얼마나 궁한지, 서울을 얼마나 동경하는지 등의 정보도 있다. 모든 정보는 수십 차례의 통화를 통해 교묘하게 뽑아 낸 것들이다. 이런 정보를 손에 쥐고 ‘맞춤형’으로 공략하면, 꼼짝없이 불법 다단계에 걸려들게 된다.

 ‘강의 노트’ 또는 ‘노하우 노트’도 거마 대학생들의 필수품이다. 상위 직급자들의 강의가 정리돼 있다. 사람을 어떻게 속이느냐가 내용의 핵심이다. 불법 다단계 업체에서 일했던 강모(28)씨는 “ 경찰의 조사가 있으면 업체 상부가 거마 대학생들의 노트를 숨기도록 지시한다”고 말했다. 이 안에 불법 다단계 운영의 핵심인 거짓말, 사기, 회유, 협박, 강매 등 사람 장사의 수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탐사기획부문 = 이승녕·고성표·박민제·이서준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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