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야구의 전설’ 앗아간 대장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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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무탈의 삶에 마(魔)가 낀 것은 2005년이었다.

 “며칠 동안 식사 후 체기가 있는 것처럼 속이 더부룩하고, 화장실을 다녀와도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일시적 현상으로 보아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어느 날 변에 선혈이 묻어 나왔는데 겁이 덜컹 나더라고요.” 프로농구 SK 나이츠 최인선 전(前) 감독이 병원을 찾았다.

 “항문 안쪽에 혹이 있는 것 같은데, 대장내시경 검사를 한번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주치의의 말에 모든 스케줄을 미루고 검사에 응했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은 것은 그때가 생애 처음이었다. 직장암(대장암의 일종) 3기 판정이 내려졌다.

 그는 “일반검진은 정기적으로 받았는데 왜 대장내시경 검사는 한 번도 받을 생각을 안 했을까? 중요한 시합을 앞두면 심한 치질 증세로 고생하곤 했는데 그것이 몸이 보낸 엄중한 경고임을 몰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할 것 하나 없고 긍정적인 마음은 암도 어쩌지 못한다”는 의사의 말 한마디가 그에게 큰 힘이 되었다. 상대팀의 강한 공격 압박에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철저한 수비로 맞서 승리를 따냈던 승부사 근성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는 수술 후 철저한 식생활 개선과 꾸준한 운동을 실천한다. 새벽 6시면 일어나 한강 둔치를 달린다. 1시간여의 달리기를 마치면 철봉에 매달려 배를 치는 운동을 한다. 그러면 장 운동이 활발해져 변 보기가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찐 고구마·바나나·견과류(땅콩·호두 등)가 그의 아침 메뉴다. 어쩌다 고기를 먹을 때도 채소를 꼭 곁들여 먹고 음식엔 거의 간을 하지 않는다.

 최 전 감독은 진단이 늦었지만 그래도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프로야구의 전설 최동원 전 한화2군 감독은 대장암으로 14일 별세했다. 2007년 한화 코치 시절 암 진단을 받은 지 4년 만이다.

 9월은 ‘대장암의 달’이다. 두 최 전 감독과 무쇠팔 ‘박철순’ 선수를 절망하게 한 대장암이 한국인, 특히 남성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조사한 결과 한국 남성의 대장암 발병률은 세계 184개 나라 중 4위였다. 아시아 남성 가운데에선 1위였고 ‘대장암 왕국’으로 알려진 미국도 앞질렀다.

 대장암 예방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Do it) 세 가지와 가능한 한 하지 말아야 할 일(Don’t do it) 네 가지가 있다.

 ‘Do it’의 첫 번째는 정기 검진이다. 대장항문학회는 50세 이상의 남녀는 5~10년 주기로 대장내시경 검사 또는 대장조영술과 S자결장경 검사를 받을 것을 권장한다.

 규칙적인 운동도 필수다. 미국에서 1만3000명 이상의 대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활동적인 사람은 비활동적인 사람에 비해 대장암 위험이 반으로 줄어든다. 특히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이 효과적이었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을 즐겨 먹는 것도 중요하다. 이때 잡곡류보다는 채소·과일에서 얻는 식이섬유가 더 유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식사할 때 식이섬유가 많이 든 과일·채소를 곁들이면 전체 음식물의 대장 통과 시간이 단축돼 담즙산 등 발암물질과 대장 점막과의 접촉시간이 줄어든다. 또 대장 내 대변 양을 증가시켜 상대적으로 유해 세균의 밀도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와 세균에 의한 암 발생을 줄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on’t do it’의 세 가지는 동물성 지방(적색육 포함)·담배·술·스트레스다(서울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오승택 교수).

 국가별 육류 소비량과 대장암 발생률은 대체로 비례한다. 흡연은 대장암 발병 위험을 2배가량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주도 대장암 발생 위험을 2배 정도 높인다.

 남들보다 강한 체력의 소유자인 스포츠 스타들이 대장암에 걸리는 것은 치열한 승부 등 스트레스가 심한 데다 흡연·폭음·과식 등으로 이를 해소하는 경향이 있어서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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