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찾은 MB 질타 뒤 분위기 급반전 … 최중경, 세 번째 불명예 퇴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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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지난주 발생한 정전사태와 관련해 18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최 장관이 순환 정전 조치를 취한 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환율이 아니라 전기가 문제였다. 18일 최 장관은 정전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태 수습을 전제로 한 사실상의 사의 표명이다. 서둘러 발표문을 읽는 그의 모습에선 평소 자신만만한 표정은 오간 데 없었다. 목소리도 맥이 빠져 있었다.

 대규모 정전이 장관 문책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지경부 내부에서도 처음엔 예상하지 못했다. 분위기가 확 바뀐 것은 16일 저녁 이명박 대통령이 불시에 한국전력을 방문하면서부터다. 이 대통령은 최 장관을 옆에 앉혀두고 지경부·한전·전력거래소 책임자들을 돌아가며 강하게 질책했다.

 그 직후 장관 문책론은 급진전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최 장관과 에너지 담당 관료들은 토요일 정상 출근해 하루 종일 대책회의를 벌였다. 지경부 국정감사(19일) 전에 피해 보상대책 등을 발표한다는 방침이 정해졌고, 감사단을 전력거래소에 급파해 사실관계 조사에 나섰다.

 이날 오전까지도 지경부는 최대한 충실한 보상방안과 향후 대책을 내놓는 데 중점을 두는 분위기였다. 거취 관련 언급은 이르지 않느냐는 말도 일각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기자회견을 앞두고 청와대의 강경 분위기가 시시각각 전달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경부 관계자는 “당초 장관이 발표하려던 대책의 상당 부분은 정부 합동점검반 조사와 앞으로 꾸려질 전력 위기대응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로 넘기고 개요만 발표했다”며 허탈해했다.

 최 장관은 이날 “주무장관으로서 무한 책임을 느낀다”면서도 “지식경제부 장관으로서 전혀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며 억울한 심사를 드러냈다.

그는 “(비상공급용) 양수발전기가 가동되던 15일 오전 10시 또는 전압조정이 시작됐던 정오에만 통보됐어도 관계기관과 협조해 대형기관 냉방기를 끄고 국민께 협조를 요청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순환 정전 사실을 공식적으로 보고받은 것은 당일 오후 4시다. 지경부에 따르면 그나마 보고된 내용도 사실과 차이가 있었다. 전력거래소는 당일 공급능력이 7071만㎾라고 했지만 실제 가용 가능한 공급능력은 6752만㎾에 그쳤다는 것이다. 결국 순환 정전 실시 당시 실제 예비전력은 당초 알려진 148만㎾가 아닌 24만㎾로 전국 동시 정전 사태 일보 직전까지 갔던 셈이다. 최 장관은 “허위보고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정상 만찬에 참석했던 최 장관은 16일 오전에야 전력거래소를 찾을 수 있었다. 지경부 관계자는 “방문 사실을 공개하지 말라는 당부가 있어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최 장관이 이번 정전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 그의 파란만장한 관료 생활 중 세 번째 불명예 퇴진이 된다. 2003년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을 맡은 그는 원화 값이 뛰자 막대한 자금을 외환시장에 쏟아부으며 방어에 나섰다. ‘최틀러(최중경+히틀러)’라는 별명도 그때 붙었다. 하지만 시장 개입으로 입은 수조원의 손실이 문제돼 결국 환율정책 라인에서 물러났다. 이후 세계은행(IBRD) 등에 적을 두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재정부 1차관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강만수 전 장관이 강력하게 그를 천거했다. 이후 ‘최·강 라인’을 형성하며 MB노믹스를 대변하는 한 축으로 활약했지만 역시 ‘고환율 정책’ 논란으로 4개월 만에 물러났다. 강 장관을 대신한 이른바 ‘대리 경질’이란 말이 당시 나왔다. 지난해 말에는 실물경제를 도맡는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다시 과천에 복귀했다. 취임 이후 ‘산업강국, 무역대국’을 외치고, 정유사를 압박해 ‘기름값 100원 인하’ 조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불시에 터진 ‘정전사태’에 다시 발목을 잡힌 셈이다.

 관가에선 최 장관이 국정감사와 서울시장 선거 등을 앞두고 여권의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희생양’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경질 요구가 나왔다. 또 최 장관의 강한 소신과 관료답지 않게 눈치 보지 않는 언행, 잦은 정치권과의 마찰도 경질론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본인으로선 앞서 두 번은 그나마 자신의 소신을 펴다 물러난 데 비해 이번은 정치적 책임의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글=조민근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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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대한민국 대통령(제17대)

1941년

[現] 지식경제부 장관

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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