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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번역 묘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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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신준봉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이웃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 문학이 해외에 소개된 역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씨에 따르면 근대 유럽에 한국 문학을 최초로 소개한 이는 김옥균을 암살한 구한말(舊韓末)의 보수 정객 홍종우(1854∼1913)다. 한국인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었던 그는 1892년 춘향전을 번안해 『Printemps Parfume(향기로운 봄)』이란 제목으로 현지에서 출간했다.

 반면 일본은 일찌감치 유럽인들의 문학적 상상력 속에 의미 있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1726년에 출간된 『걸리버 여행기』에 이미 일본의 나가사키(長崎)가 언급돼 있고, 서양의 『이솝 우화집』은 그보다 80년을 앞선 1639년에 일본에 번역 소개됐다.

 한국 문학의 우물 안 개구리 상황은 20세기 들어서도 계속된다. 시인 이근배씨가 들려준 얘기다. 1981년 그는 문인들을 이끌고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은 여행 경비를 풍족하게 대줬다고 한다. 태국을 거쳐 그리스를 방문했을 때다. 한 그리스 문인이 이씨에게 묻더란다. “당신네 나라에 고유의 말은 있는가? 문자는?”

 만 50세가 넘어야 해외여행을 할 수 있던 시절이다. 한국인을 볼 일이 없는데 그 나라에 시나 소설이 있기나 한지, 아무리 소크라테스의 후예라고 해도 알 리가 없었을 게다.

 한국 문학을 체계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이 시작된 건 60년대 후반이다.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게 컸다. 이에 자극받아 처음에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같은 민간기구가 앞장섰다. 96년에는 민관 합동의 한국문학번역금고가 출범했고, 2001년에는 한국문학번역원이 사업을 이어받았다. 그간 번역원이 거둔 성과는 적지 않다. 11년간 30개 언어 716건의 국내 저작물 번역을 지원했다. 이 중 문학이 392건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번역원의 올해 예산은 60억원을 웃돈다.

 문제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잘 된 번역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는 점이다. 번역원이 지원한 문학 번역은 도무지 신통치 않다는 걸까. 문학평론가 김화영씨는 “한국 문학의 해외 소개는 시장에 맡겨두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한국 정부가 번역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는 이를 챙기려는 ‘부실한’ 현지 출판사만 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지원금이 목적인 출판사가 한국 문학책을 잘 팔아보려고 노력할 리 만무하다. 그러다 보니 책이 나와봤자 정작 외국 독자들에게는 닿지 못한다. 이런 악순환의 반복은 결국 한국 문학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게 김씨의 진단이다.

 김씨의 주장은 번역원을 없애자는 게 아니다. 보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우수한 한국 문학 번역자를 양성하는 쪽으로 힘을 집중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마침 번역원은 22∼23일 외국 전문가들을 초청해 번역원 10년의 성과와 갈 길을 짚어 보는 행사를 연다. 한국 문학을 보다 효과적으로 외국에 알릴 수 있는 묘책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신준봉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