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두려움 속의 새로운 기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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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호 20면

전 세계 투자자들은 지금이 제발 동트기 직전의 새벽이기를, 그리하여 조만간 밝은 해가 떠오르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다. 마침 9월에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 각국의 국채 만기가 가장 많이 몰려 있다. 이 국면만 무사히 넘긴다면 투자자들의 이런 바람은 들어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책 이슈로 번진 유럽연합(EU)의 재정위기는 리더십 부재로 인해 그 해결이 미뤄지고 있다. 프랑스 등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유럽 유수의 금융기관마저 신용등급을 강등당하는 등 낙관적 전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이번 위기의 원인은 주지하다시피 EU의 구조적인 문제다. 애당초 재정 통합이 수반되지 않는 통화의 통합은 그 자체로 모순을 내재한 것이었다. 즉 국가 간 경제력 차이가 환율에 반영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인 단일 통화 사용으로 인해 전혀 반영되지 못함으로써 환율의 자율 조정 기능이 발휘되지 못한 구조가 문제였다. 이에 따라 시간이 가면서 누적된 회원국 간의 경제력 격차가 결국 위기 국면에서 문제로 불거진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려면 EU가 완전히 해체되거나 적어도 문제가 된 일부 국가만이라도 퇴출돼야 한다. 아니면 재정까지 포함한 완전한 통합을 이뤄야만 한다. 사실 EU는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수단과 능력을 갖고 있긴 하다. 우선 현재까지 회원국들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한도를 지금의 4400억 유로에서 7800억 유로로 확대하는 것에 합의했다. 2013년 중반부터는 유럽안정기금(ESM)이 추가로 출범하기로 했는데 그 한도가 7000억 유로에 달한다.

이는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쏟아부은 자금인 2조3000억 달러와 비슷한 엄청난 규모다. 여기에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중국을 위시한 브릭스(BRICS) 등 이머징 국가들이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 또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처럼 유럽중앙은행(ECB)이 통화를 발권해도 지원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수단들이 발동되기 위해 각국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각국의 정치적·경제적 이해득실 계산 때문에 해결점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 각국의 국내적 승인 절차가 2012년 주요 선거 일정과 맞물려 있어 쉽지 않다.

그럼에도 현재 EU 체제의 해체나 일부 국가의 퇴출은 엄청난 사후 처리비용이 수반되고 글로벌 경제에 대혼란을 야기시키기 때문에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소요되거나 아니면 일시적인 충격이 있은 이후 글로벌 공조에 의해 극적인 타결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보다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편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위기의 전염 확산 방지에 주력했고 이후로도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는 등 정부 당국의 의지가 강하다. 또 다른 위기로 빠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작다고 보는 이유다. 다만 통화 유통 속도가 최저치를 갱신하고 고용과 주택 문제 해결에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는 등 당분간 저성장이 불가피하다는 점이 부담 요인이다.

중국은 7월 소비자물가가 6.5%로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여전히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긴축정책이 유지되고 있다. 8월은 6.2%로 소폭 하락했지만 통화 당국의 목표인 4%를 여전히 초과하고 있어 당분간 긴축 완화는 어려울 전망이다. 하지만 최근 유가, 곡물 가격, 돼지고기 가격이 정점을 찍고 하향 추세여서 추가로 긴축이 강화되기보다는 완화될 소지가 크다.

이렇게 볼 때 국내 증시는 글로벌 금융 불안으로 당분간 변동성을 키우며 약세 국면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주가 하락기에는 애널리스트들이 리포트를 적극적으로 발표하지 않아 이익 수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9월이면 3분기 실적 추정치들이 발표되면서 기존에 전망한 예상 이익들의 축소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럴 경우 현재의 주가 수준이 아직 매력적인 수준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장은 상당한 압력을 통해 정책의 공조를 이끌어 내는 동시에 상당히 매력적인 수준의 주가 수준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3년 전 미국발 금융위기로부터 투자자들은 두 가지의 역설적인 학습효과를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 하나는 충분히 글로벌화된 시장하에서 위기는 생각보다 강하고 빠르게 다가온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위기는 투자 측면에서 본다면 역시 기회의 다른 면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세계는 두려움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강신우(51) 펀드매니저 1세대’로 통한다. 1991년부터 펀드매니저의 길을 걸었다. 99년 현대투신 ‘바이코리아’ 펀드 신화의 주인공이다. 템플턴·PCA·한국투신운용을 거쳐 현재 한화자산운용 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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