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모글로빈과 게임속의 폭력

중앙일보

입력

폭력게임의 대명사던 <퀘이크3>가 지난해말 18세이상 구입가라는 등급으로 시리즈중 처음으로 국내에 무삭제 출시 됐다.

게임이나 영화의 심의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게임의 경우 몇 년전만 해도 아이들 놀이로 취급되기 일쑤였기에 별다른 이슈가 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년전의 <스타크래프트>심의에 대해 고무줄 시비가 있은 후 부터 관심이 증폭 되기 시작했다.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단지 동영상 몇컷이 피로 물들어서 문제가 되었고 18세 이하용으로 삭제해서 틴버전으로 출시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지만 <퀘이크>같은 1인칭 액션 게임의 경우엔 삭제하면 게임자체가 불가능하다.

국내엔 <퀘이크>같은 1인칭 액션게임이 전무하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지만 이런 게임을 만들게 되면 살상장면 표현이 문제가 되어서 아예 제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약간 성격은 틀리지만 롤플레잉 게임이 항상 배경을 판타지세계로 하는 이유도 인간에 대한 살상 때문이다.

<퀘이크>를 제작한 회사는 id소프트인데 이 회사는 <울펜쉬타인3d>라는 게임을 출시하면서 독자적인 엔진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당시엔 배경은 3차원이지만 사람이나 물체들은 2차원이어서 사람의 시체를 어떤 방향에서 보아도 하나의 모습밖에 볼수가 없었다.

이게임의 엔진을 발전시켜 <둠>시리즈가 2편까지 나왔는데 출시당시엔 미국에서도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한 폭력성을 담고 있었다. 한마디로 터트려 죽이고 찢어 죽이는 장면밖에 없는 이 게임은 스트레스 해소엔 일품이었지만 학부모들의 원성은 대단했다. 우리나라엔 당연히 정식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둠2>를 불법복제판으로 즐기던 한국 게이머들은 당시에 <둠>시리즈와는 달리 밝은 배경과 유머러스한 캐릭터를 앞세운 <듀크뉴켐3d>라는 게임이 한국에 정식으로 출시된다는 소식에 반가워했다. 그러나 출시된 게임은 총탄에 의해 나오는 피를 흰색으로 덧칠하고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인용 장면들을 제거하는 옵션키를 아예 고정시켜 두어 성인들도 게임을 완전하게 즐길수 없는 반쪽짜리였다.

혈액을 흰색이나 다른 색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게임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가가 의문스러웠다. 정식으로 출시하고도 욕을 먹은 수입사의 영향때문인지 이후 만들어진 다른 액션 게임들 <쉐도우 워리어>와 <퀘이크2>등은 한국에서 구경도 할수 없었다. 작년에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게임방에서 <스타크래프트>와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레인보우식스-로그스피어>도 부분 삭제의 비운을 겪은 바 있다.

테러리스트를 진압하는 이 게임은 앞서의 무분별한 폭력게임하고는 차원이 틀림에도 불구하고 피가 한방울도 나오지 않고 시체가 사라지게 수정을 해서 심각한 게임성의 손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논의는 음란물과 마찬가지고 계속적인 사회구성원들의 합의가 필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적어도 성인들이 제대로 된 게임을 가지고 즐길 권리는 보장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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