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역동하는 세상이 낳은 17세기의 화려함, 바로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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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바로크
임영방 지음, 한길사
947쪽, 5만원

신간을 접하며 고정관념 하나를 떨쳐냈다. “60대 중반이면 천하의 글쟁이라도 글에 긴장감이 떨어지는 법”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건 통념일 뿐이었다.

저자 임영방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1929년 생. 80대인 그는 숫제 중노동이었을 200자 원고지 4000매의 이 책을 완성했다. 내용도 매력적이다. 서구문화사를 소화한 노장의 연륜을 바탕으로 한 저작으로 평가 받을 만하다.

1626년 봉헌된 성베드로 성당 내부. [중앙포토]

 놀라운 건 이 책이 『중세 미술과 도상』『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미술』에 이은 3부작이란 점이다. 모두 8년 새 나온 이 시리즈로 그는 서양미술사 사이클을 거진 돈 셈이다. 서술은 의외로 평이하고 문장도 경쾌하다. 지적 호기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환영하겠지만, 인문학 소양은 필수다. 시대사는 물론 철학·음악·문학까지 등장하는 입체적 서술방식 때문이다.

 바로크란 말은 ‘불규칙한 모양의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barroco’에서 나왔다. 음악이건 미술이건 17세기 유럽을 무대로 꽃 피운 바로크는 화려하고 장식적이다. 그로테스크하다며 낮춰보려는 시선도 일부 있다. 저자 말대로 “점잖은 집안의 망나니”로 보는 것이다. 단 이런 구분은 극히 상대적일 뿐이다. 균형 잡힌 이상적 가치를 담는 고전주의 예술에 비춰 그렇다는 비교다.

 바로크 음악을 보라. 바흐·헨델에서 정점을 이룬 그 음악은 요즘 우리가 듣기엔 더 없이 정갈하다. 아니 밋밋하다. 에고(자아)의 출렁이는 심리(낭만시대 음악)과 멀찍이 거리를 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세 성가나 르네상스 음악의 고전적 양식에 비춰 드라마틱하게 대변신한 게 사실이다. 저자의 흥미로운 구분법대로 고전주의가 아폴론적이면, 로코코는 디오니소스적이다.

 그럼 왜 17세기인은 바로크 미술에 빠졌을까. 종교개혁 영향이 우선 컸다. 신대륙 발견, 코페르니쿠스 지동설 이후 그들은 종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 일찍이 15, 16세기 르네상스 휴머니즘까지 경험한 그들은 보다 “연극적 세상의 역동적인 모습”(930쪽)을 리얼하게 담아내길 원했다.

 전 시대 모방과 재현의 미술(고전주의)에서 벗어나 변화무쌍한 스펙터클을 담아내는 표현적 미술로 냉큼 바뀐 것이다. 오페라가 이 시대에 등장했던 것도 우연일 리 없다. 미술은 더 했다. 종교개혁 물결 앞에 배수진을 쳤던 가톨릭은 성당·수도원 장식에 부쩍 힘을 줬다. “성당은 지상의 하늘나라인데, 그것의 생생한 감동을 전하려는” 노력이다. 1626년 봉헌된 성베드로 성당의 경우 내부 제단은 연극의 무대미술에 가까워졌을 정도다.

 여기에 절대왕정의 위세 자랑도 한몫 했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만든 베르사이유 궁전이야말로 ‘과시의 미학’의 결정판이다. 신화와 역사를 모티브로 그린 예전 그림과 달리 초상화·풍경화로 뻗어가는 첫 걸음도 이 무렵에 뗐다. 결론, 목침만한 『바로크』는 읽는 노고에 너끈한 보상을 안겨주는 책이다. 한마디로 풍요롭고 디테일이 대단하다. 단 서양미술사 관전평에 그친 게 아쉽다.

 그래서 정확히 규정하자면 개론서다. 내친 김에 우리만의 시각과 해석이 담겼어야 옳았지만, 이만해도 흔한 성취가 아니다. 저자는 오래 전 프랑스 파리대에서 철학과 미술사를 전공했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전에 서울대 교수를 역임했다. 서울신문비평상(1986), 은관 문화훈장(2006) 등을 받았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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