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이석연 앞세워 나경원 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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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본회의장에서 나경원 최고위원(위)이 홍준표 대표 옆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나경원 최고위원으로 기우는 듯했던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 구도에 변수가 생겼다. 시민단체 출신인 이석연(57) 전 법제처장이 16일 “범여권 단일 후보라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전 처장의 출마 의사 표명은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의 작품이다.

홍 대표는 전날 저녁 주호영 당 인재영입위원장을 이 전 처장에게 보내 경선 참여를 요청했고, 그 자리에서 이 전 처장은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중도 보수세력을 아우르는 범여권 후보라면 나설 수 있다”는 뜻을 밝히고 홍 대표에게 전화로 알렸다.

 진작부터 ‘탤런트 정치인 불가’를 주장했던 홍 대표는 당초 외부인사 영입 케이스로 김황식 총리를 검토했었다. 하지만 김 총리와 청와대가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자 ‘이석연 카드’를 꺼냈다. 이와 관련해 당내에선 “홍 대표가 차차기 대선 때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큰 나 최고위원을 의식해 외부 영입에 주력하는 것 아니냐”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 최고위원이 16일 “여당이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지 야당을 따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책임 있는 정당으로서 후보 선출 절차를 놓고 왔다 갔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건 홍 대표를 겨냥한 것이다. 홍 대표가 당내 경선에서 뽑힌 사람을 다시 당외 인사와 붙여 결선을 치르도록 하는 2단계 경선을 추진한다는 말이 나돌자 불편한 감정을 나타낸 것이다. 나 최고위원 측의 한 인사는 이 전 처장의 출마 의사 표명과 관련해 “결국 홍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순순히 나 최고위원에게 내줄 수 없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며 “홍 대표가 끝까지 나 최고위원의 다리를 붙잡으려 할 경우 나 최고위원은 출마를 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북 정읍 출신인 이 전 처장은 행정고시(23회)와 사법시험(27회)에 합격했으며 199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을 맡아 시민사회계의 대표급 인사가 됐다. 2000년 16대 총선 땐 시민단체 등의 낙천·낙선운동에 반대하면서 박원순 변호사가 주축이 된 좌파적 시민단체 진영과 결별했다. 노무현 정부 때엔 행정수도 이전 위헌 소송을 제기해 이겼다. 이 전 처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진보·보수 어느 쪽도 아닌 헌법적 실용주의자”라며 “국민의 기본권과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는 정신, 절차적 정의를 존중하는 게 헌법적 가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가 한나라당에 입당해 경선에서 뽑힌다 해도 시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입당하면 저도 죽고 한나라당도 죽는다. 하지만 범여권 후보 단일화에는 응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선진통일연합 등 보수 우파 시민단체들은 다음 주 이 전 처장을 우파진영의 시민후보로 추대할 예정이다. 그런 다음 한나라당에서 뽑힌 후보와 1:1로 최종 결선을 치르자는 주장을 펼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당 일각에선 “민주당 보고 ‘불임정당’이라고 비판하더니 한나라당도 그 뒤를 쫓아가자는 거냐”는 등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친박계인 유승민 최고위원은 “입당도 하지 않겠다는 사람에 대해 당 후보가 될 가능성을 열어놓는 건 문제다. 이런 부분까지 민주당을 따라 하는 것은 우습다”고 말했다. 서울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박 변호사는 안철수 효과를 누리고 있지만 이 전 처장에 대한 서울시민의 인지도는 상당히 낮은 걸로 아는데 그런 그를 범여권 단일 후보로 내세울 경우 승산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비판이 일자 김정권 사무총장은 "이 전 처장을 반드시 입당시키겠다. 2단계 경선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정하·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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