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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안철수 돌풍은 정당개혁 요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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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오늘날 세계가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 문제는 ‘제도의 실패’다. 지난 30년간 세계화의 물결은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밀려들었다. 반면 오늘날 국가의 형태, 정치제도는 17세기 웨스트팔리아 조약이 규정한 주권국가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품과 서비스, 자본과 인력의 흐름에서 이미 국경이 없어졌음에도 정책과 제도는 엄연히 개별국가의 국경 안으로 제한되어 있다. 금융자본의 흐름은 이미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했음에도 이를 관할할 세계중앙은행·세계감독기구는 아직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시장현실과 제도의 괴리가 결국 세계금융위기를 초래하고 지금의 경제불안을 지속시키고 있는 근본적 요인이다. 따라서 지금 세계는 새로운 제도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 경제위기의 근본적 요인도 재정통합 없는 통화통합에 있다. 같은 통화, 같은 금리를 사용하기로 했지만 재정·사회정책에서는 각국이 주권국가로서 독자적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제도의 모순이 낳은 결과다. 이제 시장은 유로존 국가들에 재정을 통합하든지 통화통합을 포기하든지 양자택일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시장은 또한 세계에 대해 세계중앙은행·세계감독기구를 설립하든지, 아니면 자본의 흐름을 제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이에 대한 세계의 대응은 시장의 흐름을 되돌리거나 주춤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자본과 금융규제 강화가 그렇고 또한 아마 유럽이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될 일부 국가들의 유로존 탈퇴 허용이 그렇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역사는 궁극적으로 시장의 큰 흐름이 승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문제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지금 각국의 국민은 새로운 국가의 역할, 새로운 경제사회제도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면서 출현한 강력한 국가, 큰 정부는 시민의 복지 요구를 충족시켜 주었지만 경제의 파이를 늘리는 데 실패했다. 1970년대 이후 출현한 신자유주의 물결은 경쟁을 유발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소득격차를 심화시키고 경제의 변동성을 확대시켰다. 더 이상 큰 정부도, 시장만능주의도 바른 해법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된 국민들은 2010년대 들어 새로운 제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새로운 세상, 새로운 제도에 대한 갈망과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이 최근 우리에게도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인지 아직 분명하진 않지만 무언가 지금과는 다른 세상에 대한 갈망이 젊고 청량한 인물에 투영된 것이라 보인다.

 그러나 안철수 현상이 반드시 이러한 갈망을 추구하는 바른 방도인지는 숙고해 봐야 한다. 우리 국민이 혁명을 바라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대의민주주의 정치제제 하에서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정당과 국회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무소속 대통령, 무소속 시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된 것이다. 안철수 현상이 나타난 계기가 된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야당이 지배하게 된 시의회에 맞선 시장 때문이었다. 국가지도자는 소속 정당이 다수당이 되고 이의 일관된 지지를 받을 때 비로소 그가 가진 비전과 추구하는 가치를 새로운 제도로 실현시킬 수 있다.

 따라서 안철수 현상을 통해 우리 사회가 읽어야 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정당개혁이다. 우리 정당은 정책이나 이념, 가치에 기반을 두기보다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두고 이에서 나오는 기득권에 안주하며 참신하고 유능한 인재를 정치로 끌어들이지 못했다. 실제로는 지역정서에 지지기반을 두면서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대표하는 듯한 이중성에 갇혀 있다. 정치가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유능한 인사나 뜻있는 젊은이들이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리 정당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지배구조하에서 국가통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지도자는 오랜 정당 생활을 통해 검증받고, 동료 당원들과 가치와 이념과 비전을 공유하며 당정협력을 통해 정책과 제도를 개혁해 나갈 수 있는 정치인이다. 정당이 미래 정책과 제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현실화시키는 산실이 돼야 한다. 안철수 교수든 누구든 개혁적 이상과 목표를 가지고 국가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정당에 들어가 그의 비전과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정당들은 이러한 인재를 당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내부적 개혁을 해야 한다. 만약 기존 정당들이 그런 개혁을 할 수 없다면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이 정당들을 해체해 재구성하라는 것이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