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안부 협상 거부할 명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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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어제 군대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한 양자 협의를 일본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의 분쟁 해결 절차를 근거로 정부 간 협의를 제안한 것은 처음이다. 위안부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소극적이었던 정부가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때문이다. 지난달 말 헌재는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 문제를 놓고 양국 사이에 분쟁이 존재함에도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판정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정부의 ‘부작위(不作爲)’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당했다고 본 것이다.

 일본은 청구권 협정으로 군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식민 지배로 발생한 모든 피해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입장이다. 협정으로 개인 차원의 배상청구권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라는 반대 입장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소모적 법률 논쟁으로 인한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뒷짐을 진 태도로 일관해 왔다. 한·일 관계의 큰 틀을 봐야 하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 못 할 바 아니지만 피해 당사자들로서는 땅을 치고 통탄할 노릇이다. 정부의 무성의와 무책임에 대한 분노가 결국 위헌소송으로 이어졌다.

 청구권 협정 제3조는 ‘협정의 해석을 둘러싼 분쟁은 외교 경로를 통해 해결하되 실패했을 때는 중재위원회에 회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우리가 협상을 제안한 만큼 일본은 거부할 명분이 없다. 과거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친다면 성의 있는 자세로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 등 떠밀려 협상을 제안한 꼴이 됐지만 정부도 이 기회에 위안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각오로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마지못해 하는 면피성 협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각국도 위안부 문제를 용서할 수 없는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법적 배상 책임을 일본에 촉구한 바 있다. 제3국 인사가 포함된 중재위로 가더라도 우리가 불리할 것은 없다고 본다. 정부에 등록된 234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가운데 생존해 있는 사람은 69명뿐이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