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대선 후보인 남편 케네디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쓰고 있는 재클린(사진 위). 63년 8월 28일 역사적인 연설을 하고 있는 마틴 루서 킹 목사(아래). [중앙포토]
“백악관에 핵 벙커가 없어도 나와 아이들은 도망가지 않는다. 당신 없이 사느니 함께 죽겠다.”
소련이 미국과 인접한 쿠바에 핵미사일을 설치하려고 했던 1962년 10월. 당시 아이들과 함께 백악관을 떠나 피신할 것을 권하는 남편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영부인 재클린 여사가 건넨 말이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미국의 역사학자인 아서 M 슐레진저와 47년 전에 했던 인터뷰 내용의 일부다.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인터뷰 전문이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1961년) 50주년을 맞아 14일 책으로 출간된다. 『재클린 케네디: 존 F 케네디의 삶에 대한 역사적 대화』라는 제목의 이 책은 1964년 초 슐레진저가 일곱 차례에 걸쳐 재클린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케네디 부부의 결혼생활과 케네디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에피소드와 주변 인물에 대한 평가 등이 담겼다. 책 출간을 앞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했던 케네디의 혼외정사와 암살에 대해선 다루지 않았다. 케네디의 지병이던 애디슨병(호르몬 이상으로 색소침착과 근육통 등이 생기는 질환)과 척추수술 등 건강 문제도 포함되지 않았다.
재클린은 남편 케네디를 “(영국 전설 속 아서 대왕이 거느렸던) 카멜롯 기사단의 충성심과 세심함, 용기를 가진 남성”이라고 표현했다. 항상 친절하고 남을 용서하는 신사였으며, 책과 사람·가구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때론 아내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인간적인 면모도 갖췄다고 했다. 61년 미 중앙정보국(CIA)이 피델 카스트로에게 반대하는 쿠바 망명자들과 시도한 피그만 침공 작전이 실패하자 케네디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눈물을 흘렸다며 “대통령 취임 100일간 가장 공들였던 꿈이 산산조각 난 순간이었다”라고 했다.
책에는 당대 유명 인사들에 대한 재클린의 평가도 실렸다.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에 대해서는 “병적일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당시 인도 총리였던 인디라 간디에 대해서는 “뻔뻔하고 끔찍한 여자”라고 했다.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을 주도한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위선자”라고 혹평했다. 재클린은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기 전날 밤, 여성들을 섹스파티에 초대하기 위해 호텔방에서 전화를 걸어댔다는 미 연방수사국(FBI)의 도청 정보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확인되지 않는 내용으로, 당시 킹 목사에게 부정적이었던 FBI의 존 에드거 후버 국장이 재클린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한 흑색선전 내용일 수도 있다.
케네디가 당시 린든 존슨 부통령을 혹평했던 사실도 공개됐다. 케네디는 “신이여, 존슨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 나라(미국)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케네디는 63년 11월 암살돼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존슨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됐다. 재클린은 케네디가 암살된 뒤 68년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와 재혼했다. 75년 오나시스가 사망한 뒤엔 출판사업을 하다 94년 암으로 숨졌다.
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