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석 기자 시드니를 가다] (7) 호주 한인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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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올림픽으로 축제분위기에 들떠있는 시드니 한인사회.

호주동포들은 태권도가 첫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후 종주국 출신으로 자부심을 갖고 한국대표팀을 맞을 채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시드니올림픽 한호후원회가 지난해 설립되었고, 시드니한인회는 올림픽을 찾는 한인들을 위한 공간마련을 위해 더욱 크고 좋은 한인회관을 구입, 새단장작업이 한창이다.

◇한인사회의 역사
호주의 이민역사는 1964년 시드니대학 지질학과 한인유학생들로부터 시작됐다. 본격적으로 이민의 물결이 일어난 것은 70년대초 호주정부가 백인들만 이민을 허용한다는‘백호주의’를 포기하면서부터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파월기술자들이 월남패망 이후 새 삶터로 호주를 택했고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지내던 이들은 76년 사면령에 영주권을 받아 가족들을 초청하기 시작하며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사면령 이후에도 남미이민자 일부와 중동으로 취업했던 기술자들이 호주로 계속 입국을 했고 이들은 다시 80년 사면령에 의해 영주권을 받게 된다.

한인사회가 본격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한것은 80년대 중반부터다. 호주정부의 투자이민정책으로 상당수의 재력가들이 이민왔으며 미국에 비해 저렴한 학비 등을 이유로 유학생들까지 줄을 이었다.

◇호주의 한인타운
현재 추산되는 호주의 한인수는 4만여명. 이들의 대부분이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다.

시드니의 한인타운은 전철역권을 중심으로 발전 세군데에 형성됐다.

초기 이민자들이 모여 제일 먼저 한인타운이 형성된 캔터베리시의 캠시지역은 한인회관, 식당,여행사, 비디오가게, 병원 등이 모여 있다.

시드니올림픽이 열리는 홈부시 베이지역에서 10분거리에 있는 스트라스필드는 학군이 좋아 한인들이 선호하는 주거지역이다. 학생들이 많다보니 스트라스필드 전철역 주위에는 이들을 위한 상권이 발달, 방과후 학생들로 붐빈다.

또다른 한인 밀집지역은 시드니 북쪽 교외에 사는 한인들이 한국식품점을 찾으면서 형성된 이스트우드.

◇한인 주력 업종
호주는 제조업이 활성화되지 못한채 3차산업 중심의 경제구조때문에 고용시장이 작고 일자리가 그다지 많지 않은 형편이다.

따라서 80년대 이후 들어온 화이트 칼라출신의 고학력 이민자들은 자신의 경력과 학력에 맞는 직업을 갖기가 힘들다.

시드니 한인들의 대표적 직종으로는 청소업과 용접 그리고 타일작업 등이 손꼽힌다.

미주 한인사회와 같이 자본없이 노동으로 꾸려 갈수있는 청소업에 많이 한인들이 종사하고 있고 주로 파월기술자들이 몸담았던 용접은 고임금(시간당 16∼20 미국달러)으로 인기직종에 속한다.

시드니의 명물인 오페라하우스는 멀리서는 하나의 지붕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수백만장의 타일로 이뤄져 보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과 색깔을 띈다. 오페라하우스 같이 호주는 주택과 상가건물을 꾸밀때 타일을 많이 사용해 한인들의 진출도 매우 활발하다.

IMF이전 본국관광객 상대로 인바운드위주 관광회사와 선물가게등 관광업소가 번창, 한때는 50여개소에 달했지만 과다경쟁으로 연쇄도산 파동을 겪으며 현재는 20여개의 관광업소가 남아 있다. 그리고 환율들의 이유로 미국에 비해 학비와 생활비가 저렴한 호주를 찾는 유학생을 위한 유학안내업체도 40군데를 넘는다.

◇한인사회가 처한 문제와 미래
호주이민사회는 30여년동안 꾸준히 성장해왔지만 아직도 많은 문제점과 도전을 안고 있다.

호주정부의 이민 규제정책으로 한인사회로 유입되는 인구는 정체된 상황이고 80년대 투자이민을 온 재력가들은 한인사회와 담을 쌓고 ‘그들만의 세상’을 쌓고있는 상황이다.

이제 호주 한인사회는 양적성장에서 질적성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짧은 이민역사지만 1.5, 2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직에 뛰어들면서 주류사회로 나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인사회는 시드니올림픽을 계기로 새 한인회관 건립 등 큰 프로젝트와 함께 새천년 호주 이민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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