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지원, 이탈리아 국채 만기 추석 이후 증시 좌우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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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호 20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4740억 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제안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약 5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놨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유럽의 위기가 아직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미 의회 합동연설에서 “새 직원을 고용하는 기업에 세금을 감면해주고 근로자와 소기업의 급여세(payroll tax)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내용을 담은 ‘미국 일자리 법안(American Jobs Act)’을 제안했다.

오바마 대통령 500조원 부양책 발표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만 한시적으로 4.2%로 내렸던 급여세를 3.1%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올해 말 6.2%로 환원할 예정이던 급여세 세율을 당초의 절반 수준으로 오히려 더 낮춘다는 것이다. 또 사회보장기금을 지원받는 중소기업에 대한 세율도 기존 6.2%에서 절반인 3.1%로 낮추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세금감면 규모는 2450억 달러에 이른다. 급여세는 급여 총액을 기준으로 고용주와 근로자에게 부과하는 세금이다. 이에 대한 감세는 신규 노동자 고용비용을 낮춰 9%가 넘는 실업률을 낮추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여기에 들어있는 대책은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가 지지했던 제안들”이라며 “의회가 당장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일자리 법안을 실행하려면 모두 4470억 달러(약 500조원)가 필요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은 8000억 달러에 육박했던 2009년의 경기부양책에는 못 미치지만 3000억 달러 규모일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법안은 고려할 만한 장점이 있다”며 “가계와 기업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평가업체 무디스의 마크 잔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법안으로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포인트 늘고, 일자리도 190만 개 늘어나 실업률이 1%포인트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이 알려진 뒤 처음 열린 아시아 증시에서 대만 가권지수만 소폭 올랐고 일본 닛케이, 중국 상하이, 홍콩 항셍지수는 내렸다. 한국 코스피는 33.71포인트(1.83%) 떨어져 주요 증시 가운데 하락폭이 가장 컸다. 유주형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기대보다 큰 규모의 경기부양책이지만 상·하원의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난관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재엽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미 오바마의 감세안이 주가에 반영됐기 때문에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앙SUNDAY가 증권업체의 작전참모 격인 투자전략팀장 5명에게 추석 이후 증시 흐름에 대해 물어본 결과에서도 ‘미국의 경기 부양보다 유럽의 재정위기가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글로벌 경제 문제의 본질은 유럽”이라며 “독일이 열쇠를 쥐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이 그리스 지원을 거부해 디폴트 상황이 되면 알리안츠·도이체방크를 포함한 유럽 은행이 다 궁지에 몰리기 때문이다. 그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2년간 제로금리를 가져가겠다고 한 건 사실 엄청난 얘기”라며 “유럽 은행 위기만 진정되면 단기로 제로금리의 달러를 조달해 장기 투자하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크게 늘며 경기부양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리스의 디폴트 위기는 이달 말이 고비가 될 전망이다. 현재 그리스의 2년 만기 국채금리는 55.6%에 달한다.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 등 이른바 ‘트로이카’의 실사팀은 지난주 그리스 현장 평가를 중단했다. 이번 평가는 기존 1차 구제금융(1100억 유로) 중 이달 말로 예정된 6차분(80억 유로)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가 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를 지난해 10.5%에서 올해 7.5%로 낮춘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EU 집행위원회와 독일 등은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전까진 6차분 지원이 없을 것”이라며 그리스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리스 채권을 갖고 있는 은행·보험 등 민간 채권단이 손실 분담 프로그램에 얼마나 참여할지도 관심의 초점이다. 그리스 정부는 채권단이 보유한 국채를 장기 국채로 교환하는 방안을 마련해 9일까지 참여 의향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의향서에 구속력은 없지만 참여율이 90%를 넘어야 진행이 가능하다. 그리스 언론은 7일까지 참여율이 75%라고 보도했다.

사태 확산 여부도 관심거리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이달 중 문제가 풀리기는 어려운 만큼 유럽 각국이 사태 확산을 어느 정도 진정시키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5일 만기가 돌아오는 이탈리아 국채의 수익률을 보면 앞으로의 동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경제 규모가 유로존 3위인 이탈리아가 위기에 빠지면 그 충격은 그리스와는 비교가 안 된다. 다행히 5.5% 이상으로 치솟았던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5.2% 수준으로 다소 안정을 찾고 있다.

당장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미국과 유럽보다 중국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훈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미국·유럽에서는 해답을 못 찾는다”며 “중국의 소비자지표와 통화증가율을 유념해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긴축을 해온 중국이 물가가 안정되면서 통화팽창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전략팀장들은 추석 이후 한국 증시가 약보합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코스피 지수가 1700~1900의 박스권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심재엽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유럽 금융회사는 상황이 나빠지면 한국 증시에서 자금을 먼저 빼 왔다”며 “약세장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우리나라의 기업이익 추정치가 13주째 하락하고 있는 데다 유럽의 금융 문제까지 감안하면 코스피가 1500~1650은 가야 주가가 싸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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