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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신바람 문화와 서양 합리주의 공존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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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호 24면

Q.기업문화가 왜 중요합니까? 홈플러스의 고유한 기업문화는 뭔가요? 다른 회사의 좋은 기업문화는 업종 관계없이 도입해도 되나요? 홈에버 인수 후 PMI(인수 후 통합) 작업은 어떻게 했나요?

경영 구루와의 대화<9> 이승한 홈플러스그룹 회장②

A.기업문화란 기업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관과 행동양식입니다. 기업문화는 기업으로서는 최후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죠. 홈플러스의 기업문화는 신바레이션(synbaration)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한국, 즉 동양의 신바람 문화와 서양의 합리주의(rationalism)를 접목한 것이죠. 두 문화권의 강점이랄까 빼어난 가치를 화학적으로 결합해 본 겁니다. 비유하면 홈플러스의 임직원들은 젓가락도 사용하지만 포크도 씁니다. 포크로 찍은 음식은 다시 내려놓기 어렵지만 젓가락으로 집은 음식은 얼마든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포크는 원칙적 사고를, 젓가락은 유연한 사고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죠.

기업엔 이 두 가지가 공존해야 합니다. 신바람만 강조했다가는 자칫 회사가 망할 수도 있고 팀워크를 경시한 합리성으로는 성과를 극대화할 수 없습니다. 신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우리는 유통업계 최초로 10년 전 주5일 근무제를 실시했고, 유통업계 최고 수준의 급여와 복리후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신바레이션은 제가 만든 조어인데 2003년 국어사전에 등재됐어요. 신바레이션은 물론 다른 기업, 다른 업종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홈에버 인수 당시 우리 인수팀에 PMI(인수 후 통합)의 성공은 우리의 겸손한 자세에 달렸다고 말했습니다.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이 겸손이었습니다. 피인수 기업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그들이 움직이고 시스템도 바꿀 수 있습니다. 점령군처럼 굴지 않고 한 가족으로 대하자 차츰 마음의 문을 열더군요. 또 홈플러스와 홈에버의 기업문화를 화학적으로 결합하기 위해 기업문화팀을 만들었습니다.

홈에버 노조의 요구 중 큰 틀에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원칙에 해당하는 것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원칙을 무너뜨리면 다른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죠. 이런 지침 말고 구체적인 협상 자체에 대해서는 인수팀장에게 전권을 위임했는데 그래서 협상 진행이 빨랐습니다. 처음엔 왜 회장이 협상 테이블에 안 나오느냐고 항의하던 노조도 인수팀장이 전결하는 것을 보고 그런 요구를 철회했죠.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성이고 장기파업 중이던 노조와 42일 만에 협상을 타결했습니다. 그후 3년이 다돼가지만 노사분규 한 건 없습니다.

홈에버를 인수할 때 거기 여성 인력의 평균 연령이 홈플러스 쪽보다 열한 살 많은 42세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부서를 옮기면 큰일 나는 줄 알더라고요. 심지어 해고되는 것 아닌가 걱정을 했습니다. 교육도 제대로 받은 일이 없고 교육을 하려고 해도 배우려들지 않았죠. 그래서 ‘우생순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여자핸드볼 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엔 노장 선수들이 나옵니다. 올림픽 2연패의 주역인 주인공은 소속팀이 해체되자 대형마트에서 일하다 대표팀에 합류하죠. 이 영화는 경기에 필요한 건 투혼일 뿐 나이는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감성적인 터치로 주부 사원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컴퓨터 조작 등 전문지식을 쌓게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 덕에 이 사람들이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한 주부 사원은 도성환 당시 홈플러스테스코(옛 홈에버 운영사) 대표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번 교육 덕에 제 일을 사랑하게 됐고 제가 먼저 변해야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소중한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 결과를 보면 홈에버 인수 직후인 2008년 하반기 기존 홈플러스 매장 직원과 홈에버 매장 직원 간에 점수 차가 31점이나 났습니다. 지난 상반기 그 격차가 6점으로 줄어들었어요. 옛 홈에버 매장 직원 만족도는 3년 만에 48점에서 76점으로 뛰었죠(100점 만점). 이쯤 되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두 집단 간에 문화적·화학적 결합이 거의 이루어졌다고 자평할 수 있어요.

2009년 세계적인 인사 컨설팅 업체인 에이온휴잇이 홈플러스를 포함해 20개 사를 아시아 최고의 직장으로 선정했습니다. 당시 에이온휴잇 측이 전체 평가 대상 기업 가운데 홈플러스가 직원들의 몰입도가 가장 높다고 밝혔습니다. 최고의 직장으로 뽑힌 회사 직원들의 몰입도 평균 점수가 75점이었는데 홈플러스는 80점이었죠. 저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우리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구성원들에게 저는 “우리 회사에 ‘세계 최고의 유통회사’라는 비전이 있듯이 각자 나름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오롯이 회사의 몫이죠. 코이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코이는 생태계의 조건에 따라 다 자랐을 때의 크기가 다릅니다. 어항에서 키우면 다 자라도 작지만 연못에서 자라면 더 크고 강에서 자라면 엄청나게 크게 자라죠. 구성원들에게 제가 “여러분이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어항 같은 회사가 아니라 강이나 바다 같은 회사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홈플러스에서 1년 근무하면 다른 회사에 2~3년 근무한 만큼의 브랜드 가치와 지식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을 가꾸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의 산물이 인천 무의도에 자리 잡은 테스코·홈플러스 아카데미입니다. 지난 7월 문을 열었는데 글로벌 기업이 세계 최초로 해외에 만든 교육기관이죠.

저는 회사 창립 이래 신임 점장들에게 의자와 구두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구두는 고객을 위해 현장에서 열심히 뛰라는 뜻으로 줍니다. 의자는 기업가 정신, 점포에 대한 오너십,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서 일하라는 의미를 담아 등받이 뒤쪽 상단에 점장의 이름을 새겨서 줍니다. 백악관의 각료회의실에서 의자마다 장관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죠. 미국의 장관들은 퇴임할 때 이 의자를 집으로 가져간다고 합니다. 점포 개점 행사 때면 제가 인사말을 하면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우리 점장은 미국의 장관급”이라고 한마디 합니다. 그러고는 점장을 단 한가운데 앉히고 국회의원, 시장, 지역의 유지들을 그 뒤에 둘러서게 한 채 기념촬영을 하죠. 점장으로 하여금 긍지를 갖게 하려는 겁니다.

어쩌다 지역의 자치단체장이 부탁을 하느라 저에게 전화를 걸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해당 점장한테 직접 얘기하시면 된다”고 말하죠. 초강대국인 미국의 장관급인데 그 정도 상대는 되지 않겠어요? 이렇게라도 점장의 권위와 위신을 세워주려는 것이죠. 그래야 점장이 지역사회에서 리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권한 위임의 의미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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